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낮에는 성인군자같은 지킬 박사가 밤이면 괴물같은 하이드씨가 되는 이중
성격을 생겨날 때부터 갖고 있다.

양면성은 상대성으로도 표현된다.

서울의 남산이 강남에서 보면 북산인 것처럼...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시간마저도 특수한 상황에서는
느려지거나 빨라질 수 있다.

양자역학은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제시한다.

비교적 질서정연한 자연질서도 이럴진대 변덕과 탐욕과 이기심에 따라
상황이 급변하는 주식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면 예기치 않은 실패를 하기 쉽다.

"인간 대다수가 그들의 능력에 대해 오만한 자부심을 갖고 그들의 운에 대해
터무니없이 신뢰하기 때문에 투기가 일어나고 거품이 생기며 결국은 쓰라린
상처를 입는다"고 애덤 스미스는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만은 예외적으로 이런 양면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면 더욱 그렇게
된다.

제한된 정보와 굳어진 편견으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만들어 집행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에 선보인 "하이일드펀드"가 대표적인 예다.

하이일드펀드는 이름만 보면 수익이 많이 나는 (high yield)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이런 착각 때문에 8조1천억원이라는 돈이 65일 만에 하이일드펀드로
유입됐다.

불행하게도 이런 돈은 죽을 줄도 모르고 불을 향해 돌진하는 부나비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하이일드에만 정신이 팔려 그것에 내포돼 있는 위험 (risk) 에 대해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일드펀드가 투자하는 유가증권은 주로 신용등급이 BB-이하인 채권이다.

이런 채권은 수익률이 높은 대신 부도날 확률도 높다.

신용평가회사에 따르면 BB-이하 채권의 부도율은 10%에 달한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높은 수익은 커녕 원금마저 날려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하이일드펀드가 아니라 "투기채권펀드"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투자자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하이일드펀드가 처음 생겼을 때는 시큰둥
했다.

금융감독원은 여러가지 "미끼"를 던지며 하이일드펀드를 "11월 대란설"을
잠재울 수 있는 특효약으로 선전했다.

공모주의 10%와 실권주의 30%를 배정해주고 이자소득세를 절반으로 깎아
주었다.

투신(운용)사가 펀드규모의 10%를 출자토록 함으로써 원금의 일부를
보전해준다고 약속했다.

운좋게도 지난해 11월부터 코스닥시장에서 공모주 주가가 급등해 당시 설정
됐던 펀드의 수익률도 수직상승했다.

일부 펀드는 한달만에 50%를 넘는 경우도 생겼다.

"밑져야 본전"이라며 쭈뼛쭈뼛하던 돈이 올 1월부터는 물밀듯이 이 상품으로
밀려들고 있다.

여기에 고무된 금감원은 이번에는 CBO(후순위채권)펀드도 만들었다.

그러나 하이일드펀드는 생태상 투기채펀드라는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된다.

하이일드펀드 수익률이 현재 30%라고 해도 그것은 편입된 공모주 주가가
떨어지지 않고 투기채권이 부도나지 않아야만 만기 때까지 유지된다.

연간 수익률이 15%이하에 머물거나 원금마저 손해봤을 때는 6천5백억원
가량 출자한 투신(운용)사의 경영도 크게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도 놓쳐서는
안된다.

투자의 기본은 아는 투자대상을 아는 타이밍에 아는 만큼 사는 것이다.

또 위험은 낮으면서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대상이다.

수익이 높으면서도 위험이 크다면 그것은 투자라기 보다는 투기일 뿐이다.

정부나 금감원이 앞장서서 위험이 높은 하이일드펀드나 CBO펀드 판매를
부추긴다면 그것은 많은 국민들의 재산을 잃게할 수도 있는 일이다.

< 홍찬선 기자 hc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