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우차 처리에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내 자동차 생산능력을 4백만대 수준으로 유지하고 고용을 승계해 주면
되지 대우자동차의 주인이 누가 되는가는 문제되지 않는다"

이런 결론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의 "미국 몇 개 사단이 오는 것보다 GM
(제너럴 모터스)이 들어오는 게 낫다"라는 말이 인용됐다.

또 한 칼럼니스트는 "선진국에서는 GNP(국민총생산)보다 GDP(국내총생산)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로 대우차를 인수하는 기업의 국적을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우차 처리 입장은 일본 기업이 미국 시장을 개척하면서
경제적 용어로 정착된 바로 "교두보 효과"라는 것을 완전히 간과한 것이다.

기업이 외국에 진출하려면 유통이나 생산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 기업이 70,80년대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거점 확보를 끝낸
상태에서 엔.달러 환율은 1985년2월25일 2백62.65엔에서 87년12월31일엔
1백21.25엔으로 3년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미국의 대일 경상수지 적자는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따져보니 일본 기업이 미국 시장에 구축한 유통망 및 생산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경영혁신을 통해 비용절약을 이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결국 일본 기업으로서는 미국에 구축된 생산 및 유통 거점을 유지하지
않으면 그동안 투자된 비용이 전부 매몰비용이 되므로 그 교두보를 사수함
으로써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우가 GM과의 경쟁입찰에서 필사적으로 폴란드 공장을 인수한 것은
개도국으로서 외국에 사업거점을 확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중요한가를 해외 사업 경험을 통해 절실히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대우자동차의 폴란드 공장은 대우차가 동구에 진출할 교두보였다.

대우 폴란드 공장을 인수함으로써 동구권 진출의 거점을 마련하는 동시에
한국에선 아시아 생산거점 또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우차는 GM이나
포드의 최고경영자에게 매력적이다.

특히 대우가 폴란드 공장을 인수할 때 경쟁 입찰자였던 GM으로서는 그 때
놓쳤던 폴란드 생산공장까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기회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에 현대자동차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바로 한국
기업이 해외에 확보한 거점을 외국 자동차 회사에 넘겨줄 수 있느냐 하는
이유에서다.

폴란드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려다가 대우차와의 경쟁문제로 좌절됐던
현대자동차로서는 GM이나 포드와 같은 견지에서 대우의 폴란드 공장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어렵게 확보한 교두보를 지키기 위해 대우차를 현대에 매각할 경우
이는 이미 현대의 독주 상태에 놓여 있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독점체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한 산업의 독점체제는 해당기업의 이윤극대화에는 적격이지만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해 주지는 못한다.

최근 미 법무부가 MS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기 위해 3개의 독립회사로
분할 가능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국익도 챙기고, 한국 자동차 소비자의 권익도 보호하기 위해 대우차를
부분적으로 해외 매각하고 제3의 국내기업이 폴란드공장을 비롯한 나머지를
인수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을까.

BIS비율 8% 이상을 만족시켜야 하는 국내 채권금융기관의 경우, 이미
기아자동차의 회생과정에서 부채탕감 6조2천억원, 출자전환 8천4백억원으로
회수불능채권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차 처리에 있어 부담을 또 떠 안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에 매각하더라도 어차피 국내 채권단들의 대규모 손실은
불가피하다.

국내 금융기관이나 정치권은 기업구조조정에서의 단기적 업적을 과시하려
하기 보다 어렵게 축적한 우리의 자산이 성급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크게
희생되지는 않을지 심각하게 재고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고도성장 개발시대를 주도했던 단기적 성과위주 사고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스피드 경영이 요구되는 시대에 개혁의 주체로 적합할 수 있다.

이들은 내부나 외부의 큰 압력에 신속하게 순응하는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냉전의 시대가 끝난 글로벌-지역주의 시대에는 장기적 목표라는
관점에서 사고할 줄도 알아야 한다.

또 선진국 관료만큼 국익과 소비자의 권익도 함께 챙길 줄 알아야 한다.

< cgrh@swift2.sw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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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서울여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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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