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디지털, 경영은 아날로그"

벤처기업들이 최근 규모가 커지면서 인원이 50명만 넘어도 경영문제에
부닥쳐 쩔쩔매는 경우가 많다.

인적자원관리 회계 자금관리 등 이미 성장한 기업이 겪은 경영문제에
봉착하지만 이를 해결할 전문인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름은 벤처기업이지만 조직은 전통 기업조직을 답습한 곳도 적잖다.

일부 벤처기업은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조로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급성장한 인터넷 벤처기업 C사는 머리가 몸통보다 큰 경우다.

회사가 갑자기 커지자 인력을 외부에서 허겁지겁 데려오기 시작했다.

우수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이사나 부장 등 간부 자리를 막 내주다 보니
결재라인이 길어진 것.

실무자보다 의사결정하는 중간관리자가 많은 꼴이 됐다.

직원 50명에 결재 사인하는 사람이 10명을 넘은 것.

대기업병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 타이밍을 놓치고 실행능력이 떨어진 결과 눈에 뻔히
보이는 시장도 놓치기 일쑤다.

이 회사는 최근 명성만큼 매출이나 이익신장이 이뤄지지 않아 조직내에서
불평이 슬슬 새나오고 있다.

벤처테크의 유승삼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출발한 벤처기업이라도
중간에 경영기법이 떨어져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인적자원
관리 또는 관리회계에 대한 인식이 모자랄 땐 조직이 와해되는 경우마저
생긴다"고 말했다.

특히 동업을 한 경우에는 기업이 커지면서 동업자간 의견대립을 조정하는
기술이 약해 갈등이 심화되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조직이 "대기업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면 조직에 끊임없이 기업가
정신을 불어넣도록 설계해야 한다.

벤처전문 컨설팅회사인 e커뮤너티의 정회훈 대표는 "신속한 결정과 변신이
생명인 벤처기업에서는 개개인이 창업기업가라는 인식이 들게 해주어야 한다.
조직원 개인에게 권한을 넘겨주고 성과에 따라 평가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조직이 1백명을 넘어서면 더이상 벤처기업처럼 관리하기가 물리적
으로 어렵다고 진단하고 조직이 커지면 자꾸 분사하는 전략을 쓰면 좋다고
제안했다.

국내에서 벤처기업 조직과 경영에 모델로 거론되는 회사도 있어 이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연우엔지니어링의 경우 총괄사장 밑에 6개 사업부문을 맡는 책임자를
두었다.

이들을 직원들은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사장이 아니다.

각 사업부문을 맡고 있는 사장들은 인사권이 있어 연봉제를 실시하는
직원들을 평가한다.

인력도 외부에서 자신의 재량으로 스카우트해올 수 있다.

회계는 당연히 독립채산제다.

그래서 결재에 드는 시간을 줄여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

총괄사장은 대형 투자정도에만 관여할 뿐 나머지는 모두 부문사장에게
넘겨주고 있다.

메디슨의 경우는 조직만이 아니라 기업문화를 아예 기업가정신 조직으로
정하고 있다.

메디슨은 생명력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자기증식을 하도록 한다.

"메디슨 맨"은 정년퇴직때까지 충성을 다하겠다는 마음보다 사장이 되겠다는
기업가정신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메디슨맨 모두가 사장으로 길러지도록 하는 것이다.

메디슨은 그래서 대리점이나 사업부문을 대거 분사하거나 다른 회사에
지분출자를 하고 직원들을 사장으로 임명한다.

국내에만 벌써 22개의 자회사가 있다.

벤처기업은 변화 적응 속도 창의성 등이 조직내에 녹아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벤처기업은 조직을 끊임없이 벤처기업화해야 한다는 것이
성공한 벤처기업인들이 들려주는 교훈이다.

< 안상욱 기자 sangwoo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