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밸리엔 명절이 없다"

새천년들어 처음 맞는 민족 최대의 명절 설.

고향을 찾거나 3일간의 황금연휴를 나름대로 즐기기 위해 잔뜩 들떠있다.

경기가 풀려 선물보따리도 푸짐해졌고 마음도 넉넉한 표정들이다.

그러나 벤처기업의 메카로 불리우는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에서는 설 얘기가
낮설기만 하다.

이 곳의 젊은 벤처기업인과 연구원들에겐 치열한 생존경쟁의 연장일
뿐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평일과 주말을 잊었듯이 명절 또한 관심 밖이다.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전자상거래 솔루션 개발업체인 파이언소프트.

이 회사는 인터넷 분야에 뛰어든 지 불과 2년만에 전자상거래 부문에서
최강자로 성장했다.

지난해 첫 제품 시판으로 올린 매출액이 13억원.

파이언소프트는 올해 최소 매출목표로 1백30억원으로 잡고 있다.

다음달 초엔 증권 금융 보험 부동산 등과 관련된 맞춤식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자회사 "머니 오케이"를 설립할 예정이기도 하다.

이 회사 직원 45명중 절반 정도는 설연휴를 반납하고 근무를 자청했다.

대부분 미혼의 프로그램 개발자들이다.

평소에도 자유 출퇴근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근무기록이 남거나 특근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상성 사장은 "누가 근무하는 지 잘 모른다"며 "벤처기업의 성패는 바로
직원 자신들의 연봉이나 스톡옵션 등과 직결되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틀린 결정"은 용서받아도 "느린 결정"은 용서받지 못하는 게
테헤란밸리의 법칙"이라는 말로 벤처 시장의 분위기를 설명한다.

"기술개발 속도" 뿐 아니라 "생각의 속도"에서 까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설"이 관심거리가 되겠냐고 반문한다.

이 회사의 솔루션 개발팀장을 맡고 있는 강현철(29)씨.

그는 설연휴 3일내내 출근하기로 했다.

물론 이번 설연휴 때만 유독 그런 것은 아니다.

입사 3년째인 강 팀장은 지난 1월1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그것도 새천년 첫날이라 조용하게 생각을 가다듬느라 쉬었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 시장에서는 분초로 승패가 결정된다"며 "남보다 먼저
선도적인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고 강조한다.

한발 늦으면 2등이 되는게 아니라 아예 시장에서 도태되고 만다는 것이다.

설 연휴를 일로 지새는 것은 파이언소프트만의 얘기가 아니다.

테헤란밸리에서 젊음을 불태우는 벤처기업 직원들의 대부분이 그렇다.

설날 하루만 쉬는 곳이 수두룩하다.

아예 회사에서 먹고 자는 상황이어서 설이 됐는지 조차 모르겠다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테헤란밸리에 있는 1천5백여 벤처기업들에 시간은 일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 손성태 기자 mrhand@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