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복여(42)씨와 김선우(30)씨가 첫시집 "먼지는 무슨 힘으로 뭉쳐지나"
와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작과비평사)을 나란히 펴냈다.

두사람 다 "신참"이지만 작품은 옹골차다.

정씨의 시어는 존재의 뿌리까지 깊숙이 밀고 들어가는 힘과 밀도있는
직조법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자아와 몰아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면서 자연과의 합일을 거쳐
스스로 음악이 된다.

"나무들은 제 그늘만큼의 연못을 품고 있다/스스로 빠져서 깊어지는,/(...)/
그 그림자 받아 안은 바닥의 한부분이/뿌리의 안쪽에 닿아 있는 것이 보인다/
나무들은 저렇듯 뿌리깊어/제 몸을 출렁이는 것이다"("나무연못")

그의 몸과 마음은 나무 뿌리에 닿았다가 마침내 연못의 중심이 된다.

그 중심은 들판과 집이라는 "정신의 거처"로 확장되기도 하고 때로는 거미
집으로 뭉쳐지기도 한다.

"내가 눕자 연못도 함께 누웠다/그러곤 보일 듯 말 듯한 바닥을 내게
주었다/그 이후 나는 날마다 내 열쇠 하나로/어떻게 이 연못을 잠가두고 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깊은 방")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거미는 몸 속에서 뽑아낸 은실로 밤눈 어두운
날것들의 발목을 붙잡거나 "내 몸을 친친 감고/나를 타고 기어다니"다가
허물어진 폐가에서 감자꽃으로 환생한다.

그럴 때 시인은 "기꺼이 그 집으로 들어가기로"("왼쪽은 어지러운 생각과
함께")한다.

그의 자의식은 "모든 형태의 내장된 어둠은/어딘가에서는 빛이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비로소 온통 나무인 나무가/한그루 서"("모든 상징은
어둠이다")있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가 대자연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고 그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등에 업힌 아이를 바라보다 "어깨에 멘 가방을 앞으로 당겨/아무도 모르게/
남은 내 시간을 더듬어"("귀가")보는 순간, 시인의 내면은 우주와 융화된다.

일곱편의 "사계" 연작도 잘 다듬어진 시다.

시어와 제목 사이에서 묘한 리듬을 자아내는 음악용어들은 이미지에 강약을
주면서 호흡까지 적절하게 조절한다.

김선우씨의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은 강렬하고 도발적
이다.

"대궁 속의 격정"과 "참숯처럼 뜨거워"지는 그의 힘은 관능으로부터 나온다.

시적 에너지가 불꽃처럼 날름거리면서 육체의 뼈와 살을 달군다.

"촉촉하게 젖은 꽃잎을 연상시키는 그의 시는 여린 듯 강렬하고 수줍은 듯
관능적"(시인 나희덕)이다.

그것은 어머니와 꽃과 꿀벌의 이름으로 표현되지만 생명력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모성과 관능의 줄기에서 피어나는 꽃은 상처를 치유하고 새 살을 돋아나게
하는 재생과 닮았다.

"어라연"의 목욕장면이나 "엄마의 뼈와 찹쌀 석 되"에 그려진 생사순환의
고리도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된다.

그의 시는 무엇보다 "이미지의 육화" 때문에 더욱 빛난다.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싸아하게
김이 오르고/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십이지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컹 올라온다/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붉게 언 산수유 열매 하나/발등에 툭, 떨어진다"
("대관령 옛길")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