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에 있는 한 PC방의 저녁 시간.

헐렁한 청바지에 모자를 돌려 쓴 한 대학생이 모니터를 들여다 보면서 연신
웃음을 짓고 있다.

얼핏보면 채팅을 하는 것 같지만 가끔 누군가에게 얘기하듯 중얼거리는
모습이 특이하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 채팅을 하는 거예요. 예전엔 그냥 글로만 얘기를
했지만 이젠 얼굴을 보면서 얘기할 수 있으니까 훨씬 재미있어요"

대학 3학년인 김모(21)씨가 요즘 푹빠져 있는 영상채팅사이트 ''오마이러브
(www.ohmylove.co.kr)다.

지난해말 인터넷 솔루션 회사 오마이러브가 처음 선보였다.

김씨는 상대의 얼굴을 볼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PC방에 오면
한두시간은 꼭 영상채팅을 즐긴다.

영상채팅사이트 오마이러브는 갑자기 나타난게 아니다.

인터넷 채팅으로 네티즌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러브헌트
(www.lovehunt.co.kr)"를 만든 천두배(42) 사장의 손길이 담겨 있다.

러브헌트에서 한 단계 발전한 채팅사이트인 셈이다.

오마이러브는 러브헌트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고 있다.

불과 한달만에 회원이 40만명으로 늘어날 정도다.

단조로운 문자채팅에 싫증을 느낀 네티즌들 사이에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오마이러브는 영상채팅이 모두가 아니다.

여기엔 천 사장의 원대한 포부가 깔려 있다.

영상채팅은 바꿔 말하면 화면을 통해 서로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상회의와 다를게 없다.

인터넷에서 별도 소프트웨어를 쓰지 않고도 영상회의를 할 수 있는 시스템
이 바로 천 사장의 진짜 관심영역이다.

천 사장은 이미 "글로비즈 21"이란 이름의 영상회의 시스템을 개발, 판매
하고 있다.

글로비즈21은 멀리 떨어진 사람과 얼굴을 보면서 회의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료까지 공유할 수 있는 영상회의 시스템이다.

한국에 있는 사람이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자신의 PC에 있는 자료를
미국에 있는 사람에게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

천 사장은 앞으로 영상채팅 시스템을 전자상거래에 접목시킬 계획이다.

그는 "사람들은 전자상거래라고 하면 인터넷만 생각하지 정말로 중요한
것을 지나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래상대간의 인간관계입니다"
고 말한다.

일반적인 상거래에서는 인간적인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전자거래에서는 그것이 무시된다는 것이다.

천 사장은 "어떤 상점의 단골이 된다는 건 값이 싸고 집에서 가깝기 때문
만은 아니며 주인이 친철하고 서비스가 좋아야 자주 찾게 되는 것"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전자상거래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천 사장은 지금의 전자상거래는 자동판매기로 물건을 파는 방식에 비유했다.

고객이 인터넷에서 진열된 물건을 살펴보고 자동판매기에서처럼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구입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제품에 대해 뭔가 물어보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렇게해서는 인간적인 관계가 없는 무미건조한 "전자거래"만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천 사장은 끈끈한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한 차원 높은 전자상거래
체계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영상채팅 시스템을 이용한 쇼핑몰 도우미를
생각해 냈다.

고객이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도우미 버튼"
을 누르면 실제 사람이 나와 물건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방식이다.

천 사장은 이를 통해 "전자"와 "상거래"가 결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대기업이 여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오마이러브에 투자까지
했다.

천 사장이 인터넷 업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98년 러브헌트를 시작
하면서부터다.

당시 국내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챗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움직이는 아이콘으로 대화하는 사람의 기분을 표현해 주는 단순한 아이디어
가 러브헌트를 최고의 인터넷 채팅사이트로 올려 놓는데 큰 역할을 했다.

러브헌트의 또다른 비결은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대화 상대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에 있다.

평소 역학에 관심이 많던 천 사장이 틈날 때마다 만들어 놓은 궁합 프로그램
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러브헌트에 접속해 있는 남녀 가운데 가장 궁합이 잘 맞는 5명의 목록을
보여줘 원하는 상대와 대화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러브헌트는 현재 회원수가 2백25만명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천 사장은 사실 컴퓨터와 전혀 무관한 문학도 출신이다.

연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27세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3대학인
누벨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했다.

전공은 문학작품에 나오는 어휘를 분석하는 어휘통계빈도 분석.

이때 처음 PC를 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늦은 나이에 프로그래밍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러브헌트와 오마이러브를 있게한 것은 그의 컴퓨터
실력이 아니라 문학적 소양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풍부한 감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력과 경험을 자산으로 천 사장은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새로운
돌풍을 일으킨다는 꿈을 꾸고 있다.

< 김경근 기자 choic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