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 서울대 교수 / 생물학 >


지난 1월24~28일 캐나다 몬트리올.

1백30여개국 정부대표를 비롯 UNEP와 그린피스, 자연의 친구들 등 NGO
대표들이 모였다.

이들은 밤을 새우며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우여곡절 끝에 농산물 등 유전자변형물체(LMO:Living Modified Organism)를
규제하기 위한 "생명공학 안정성 의정서"를 채택했다.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 각국의 언론은 이를 중점 보도했다.

한국정부에서는 환경부 기획관리실장과 외교통상부 국제경제국장을 수석
대표로 하는 대표단이 참가했다.

한국은 의정서 채택을 주도했다.

이 의정서의 뼈대가 되는 LMO (LMO: Living Modified Organism ) 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만든 생물체를 뜻한다.

생명공학기술의 산물이다.

유전자 조작기술은 인류의 온갖 질병을 치료하고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의 기술"로 각광받은 지 오래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이러한 의정서가 국제사회에 마련돼야 할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자.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난 이래 40억년에 가까운 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안정을 유지해 온 오늘의 생태계가 이런 LMO의
출현 때문에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아직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황소개구리가 들어와 한국의 토착
생태계를 그처럼 교란시킨 것을 겪지 않았는가.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번에 채택된 의정서는 국제적으로 규범화된 환경
정책의 중요 원칙인 사전예방주의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나
"유해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통제에 관한 협약(BASEL)" 등의 기존 환경협약
들은 모두 문제가 발생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LMO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바 없다.

그러므로 많은 과학자들이 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LMO로
만든 제품들을 규제하는 이 협약이 옳은 것인지 협의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호랑이나 곰처럼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후에 조치를
취해 온 종래의 방법은 그 실효성이 매우 작은 것임을 우리는 체험한 바
있다.

특히 LMO의 경우 그것이 기존 생태계를 교란했을 때 미칠 엄청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때문에 사전 예방이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한 생명체를 조작해 다른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슈퍼 옥수수 등의 농작물을 만들어내고,
복제기술로 영롱이 젖소를 만들어내는 생명공학기술이 가져올 희망적인
미래를 아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체의 인공적 조작을 기존 윤리관의 잣대로 더이상 평가할수
없게 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할 보편타당한 잣대를 마련하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할 것이다.

지난 5년여동안 갖은 진통을 겪으며 새 천년의 벽두에 그 첫번째 협약으로
본 의정서가 채택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것은 21세기야말로 구호만이 아닌 진정한 의미로서 환경의 세기가 됐음을
알리는 획기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건성으로 알고 넘기던 자국의 생물자원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큰 과제도
안겨주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동안 첨단과학의 열풍에 휘말려 우리들이 지닌 생물
자원의 기초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런 개방의 시대를 맞게 됐다.

선진 외국에선 이미 2백~3백년전부터 수행해 다 끝낸 일을 우리는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선 흔히 볼수 있는 자연사 연구기관 하나 없는 나라가 한국 아닌가.

지금 세계적 관심의 초점이 되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가차원의 정보조차
체계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관리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이제 우리도 본 의정서의 채택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국민적인
홍보에 앞장서야 한다.

이 의정서의 채택과정에서 LMO 농산물의 교역제한이 주요 쟁점이 됐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많은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 의정서가 시사하는 생물학적인 의미에 더 큰 관심을 보여야 한다.

내일을 대비하도록 국민적인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 inkyulee@plaza.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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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식물학과
<>일본 홋카이도대 이학박사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