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분배정책, 틀을 만들자 .. 이건영 <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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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 < 아주대 교수 / 환경도시공학부 >
경제정책에는 두 날개가 있다.
성장과 분배다.
성장은 앞으로 나가는 것이고 분배는 옆으로 나눠주는 것이다.
경제정책의 요체는 경제가 계속 성장하도록 국가 에너지를 모아주는 것이며,
또한 그 성장의 과실을 꾸준히 분배해 주는 것이다.
이 두 날개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비중이 다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성장 위주의 경제를 추구해 왔다.
분배나 복지에 대한 논의는 항상 미뤄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경제가 질적으로 성숙해 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세계화의 길을 걸으며 냉엄한 경쟁원리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에 이끌려 왔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IMF 외환위기의 수렁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고 IMF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도 세계화에 잘 대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 빈부의 격차는 커졌다.
20 대 80의 사회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지적되었다.
런던대 에릭 홉스봄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에서
"완전한 자유경제가 실현단계에 있는 많은 나라에서 소득편차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이같은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닌 것이다.
요즘 선거철이 다가오기 때문일까.
분배에 대한 정책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저소득층의 식품권제도, 스톡옵션형 우리 사주제, 전세금 지원 등등.
며칠 전에는 환경미화원 쪽방생활자들이 청와대로 초청되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3조5천억원에 이르는 초과징세액을 풀어서 빈곤퇴치와
저소득층의 생활안정을 위해 쓰겠다고 발표했다.
또 대통령은 흑자기업들이 빈민지원에 앞장서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 날 청와대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산적 복지철학을 소개한 "새천년을
향한 생산적 복지의 길"의 영문판을 만들어 전 세계에 보급한다고 발표하였다
어딘가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징세 잉여금은 우선 국가채무를 줄이는데 쓰도록 되어 있다.
또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추경예산인가.
선거용이란 의혹이 짙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살리기"로 분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빈부격차는 심화되어 왔다.
가진 자에게는 IMF 관련 정책이 금융 및 자산소득 증대의 호기였다.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이 폐지 또는 유보되고 소위 "카지노 경제"가
펼쳐졌다.
반면 "못 가진 자"는 구조조정의 칼날로 고통을 겪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선거 전 서민경제를 외치고 노동자의 지지를 받았었지만
그의 복지정책은 선거구호일 뿐이었는가.
사실 우리의 빈부격차는 서양 선진국에 비하면 작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체감지수는 다르다.
서양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남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식,동료의식이 성장의 견인차였다.
"우리"끼리는 비슷해야 하며 차이가 있으면 돋보이고 화합이 안된다.
또 있다.
"가진 자"에 대한 도덕적 공격이다.
선진국은 대체로 부자를 존경하나 우리는 부를 죄악시하고 질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의식의 차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빈부격차로 인한 위화감이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선진국의 입구에 와 있다는 지금도 우리의 경제엔진은 성장위주에 치우쳐
있다.
이것은 세제를 보면 확연해진다.
우리나라처럼 부자들이 세금 적게 내고 소위 "돈 버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
최근 복지담당의 청와대 수석이 유가증권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를 언급한
바 있다.
청와대 내에 "삶의 질 기획단"이 설치되어 오랫동안 작업한 결과이다.
그의 한 마디로 증시가 요동쳤다.
물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는
하지만, 결국 "없었던 일"로 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자.
작년같은 활황 증시에서 쏟아진 불로소득이 과연 얼마이고, 과연 누구
몫이 되었는가.
금융소득종합과세도 계속 기득권층의 눈치를 보며 미루어 왔다.
자칫 잘못하면 경제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19세기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빈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게으르게 만든다는 편견 때문에 소극적이었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지금 징세초과분을 쏟아붓는 식의 일회성 분배정책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분배의 첫걸음은 세제개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자산소득 상속 증여에 대한 세제가 공평하고 전진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재정의 우선순위가 복지정책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즉흥적인 일회용 정책만 쏟아 놓아서는 안된다.
모든 정책은 틀이 있고 맥이 잡혀야 한다.
< gyl@madang.ajo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0일자 ).
경제정책에는 두 날개가 있다.
성장과 분배다.
성장은 앞으로 나가는 것이고 분배는 옆으로 나눠주는 것이다.
경제정책의 요체는 경제가 계속 성장하도록 국가 에너지를 모아주는 것이며,
또한 그 성장의 과실을 꾸준히 분배해 주는 것이다.
이 두 날개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비중이 다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성장 위주의 경제를 추구해 왔다.
분배나 복지에 대한 논의는 항상 미뤄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경제가 질적으로 성숙해 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세계화의 길을 걸으며 냉엄한 경쟁원리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에 이끌려 왔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IMF 외환위기의 수렁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고 IMF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도 세계화에 잘 대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 빈부의 격차는 커졌다.
20 대 80의 사회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지적되었다.
런던대 에릭 홉스봄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에서
"완전한 자유경제가 실현단계에 있는 많은 나라에서 소득편차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이같은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닌 것이다.
요즘 선거철이 다가오기 때문일까.
분배에 대한 정책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저소득층의 식품권제도, 스톡옵션형 우리 사주제, 전세금 지원 등등.
며칠 전에는 환경미화원 쪽방생활자들이 청와대로 초청되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3조5천억원에 이르는 초과징세액을 풀어서 빈곤퇴치와
저소득층의 생활안정을 위해 쓰겠다고 발표했다.
또 대통령은 흑자기업들이 빈민지원에 앞장서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 날 청와대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산적 복지철학을 소개한 "새천년을
향한 생산적 복지의 길"의 영문판을 만들어 전 세계에 보급한다고 발표하였다
어딘가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징세 잉여금은 우선 국가채무를 줄이는데 쓰도록 되어 있다.
또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추경예산인가.
선거용이란 의혹이 짙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살리기"로 분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빈부격차는 심화되어 왔다.
가진 자에게는 IMF 관련 정책이 금융 및 자산소득 증대의 호기였다.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이 폐지 또는 유보되고 소위 "카지노 경제"가
펼쳐졌다.
반면 "못 가진 자"는 구조조정의 칼날로 고통을 겪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선거 전 서민경제를 외치고 노동자의 지지를 받았었지만
그의 복지정책은 선거구호일 뿐이었는가.
사실 우리의 빈부격차는 서양 선진국에 비하면 작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체감지수는 다르다.
서양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남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식,동료의식이 성장의 견인차였다.
"우리"끼리는 비슷해야 하며 차이가 있으면 돋보이고 화합이 안된다.
또 있다.
"가진 자"에 대한 도덕적 공격이다.
선진국은 대체로 부자를 존경하나 우리는 부를 죄악시하고 질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의식의 차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빈부격차로 인한 위화감이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선진국의 입구에 와 있다는 지금도 우리의 경제엔진은 성장위주에 치우쳐
있다.
이것은 세제를 보면 확연해진다.
우리나라처럼 부자들이 세금 적게 내고 소위 "돈 버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
최근 복지담당의 청와대 수석이 유가증권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를 언급한
바 있다.
청와대 내에 "삶의 질 기획단"이 설치되어 오랫동안 작업한 결과이다.
그의 한 마디로 증시가 요동쳤다.
물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는
하지만, 결국 "없었던 일"로 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자.
작년같은 활황 증시에서 쏟아진 불로소득이 과연 얼마이고, 과연 누구
몫이 되었는가.
금융소득종합과세도 계속 기득권층의 눈치를 보며 미루어 왔다.
자칫 잘못하면 경제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19세기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빈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게으르게 만든다는 편견 때문에 소극적이었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지금 징세초과분을 쏟아붓는 식의 일회성 분배정책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분배의 첫걸음은 세제개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자산소득 상속 증여에 대한 세제가 공평하고 전진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재정의 우선순위가 복지정책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즉흥적인 일회용 정책만 쏟아 놓아서는 안된다.
모든 정책은 틀이 있고 맥이 잡혀야 한다.
< gyl@madang.ajo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