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1412~1431)는 프랑스의 국민영웅이다.

열일곱 어린 소녀의 몸으로 칼을 들어 영국과의 백년전쟁(1339~1453)으로
결딴나기 직전인 프랑스를 구해낸 신화적 인물이다.

영국인의 입장에선 한갖 요사스런 마녀일뿐이겠지만 우리 뇌리에 각인된
그의 이미지는 어릴적 접한 전기속 무용담으로 신비롭게 채색되어 있다.

스무살을 넘기지 못한 그의 짧은 삶과 죽음은 "프랑스의 기적"으로 남아
있다.

신과의 대화, 일년 남짓 전장을 누비며 올린 숱한 전과, 그리고 이단으로
몰린 끝에 처해진 화형.

이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는 19세기 프랑스가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필요성에서 살을 덧붙여 만든 전설이란 주장도 있지만 끝없는 생명력
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칼 드레이어 감독의 "잔다르크의 순교"(1928년),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잔다르크의 재판"(1962년) 등이 대표적인 수작으로 꼽힌다.

"그랑 블루" "니키타" "레옹" "제5원소" 등으로 이름을 알린 프랑스 감독
뤽 베송이 잔다르크 영화목록에 하나를 보탰다.

19일 개봉되는 "잔다르크" (The Messenger:The Story of Joan of Arc) 다.

영화는 "신의 심부름꾼" (Messenger) 인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신의 계시와
현실에서의 아픈 상처, 전장과 전투, 재판과 화형으로 풀고 맺는다.

시골 무지렁이로 큰 잔 다르크(밀라 요보비치)가 13살 되던 해.

백년전쟁의 적 영국군이 잔 다르크의 마을을 습격한다.

자신을 숨겨준 언니를 살해한 뒤 욕까지 보인 영국군을 본 잔 다르크는
환상처럼 마주쳤던 신의 계시를 믿고 복수를 서약한다.

4년후 잔 다르크에 대한 소문은 프랑스전역에 퍼진다.

왕실에서도 잔 다르크가 신의 사자인지 정신병자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술렁인다.

자신에 대한 왕세자 샤를7세(존 말코비치)의 의심에 찬 시선을 돌려세운
잔 다르크는 병사를 이끌고 오를레앙성을 탈환한다.

잔 다르크는 이후 국왕에 즉위한 샤를7세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영국점령하의
프랑스 땅을 되찾는다.

잔 다르크는 그러나 국왕즉위 이후 싸움 대신 협상으로 돌아선 샤를7세와
그의 어머니(페이 더너웨이)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

영국군에게 넘겨져 종교재판을 받은 잔 다르크는 결국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진다.

영화는 전쟁영웅으로서 잔 다르크가 보여준 활약상을 기둥삼았다.

중세의 피비린내 나는 대규모 전투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레옹"의 중세판쯤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박진감이 넘친다.

잔 다르크는 신의 목소리를 들은 성녀인가 아니면 운좋은 정신병자에
불과한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잔 다르크 앞에 선 심문관(더스틴 호프먼)과의
대화를 통해 그 해답의 단서를 풀어놓는다.

전투장면 일변도인 전쟁영웅의 이야기에 밀도높은 인간내면의 갈등을 삽입,
무게중심을 맞춘 셈이다.

밀라 요보비치의 순박하면서도 광기서린 연기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