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노장은 무용"이란 말이 있다.

노인 스스로 늙으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는 뜻으로 내뱉던 비관섞인
말이다.

하기야 심신이 쇠약해지고 무력해지는 "나이 먹은 죄"는 옛날이라고 해서
면할 수만은 없었을성 싶다.

성종조에 "70세 정치정년제"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어느정도
짚어볼 수 있다.

유교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높은 관직을 지냈거나 나이가 많거나 덕이 있는
사람을 "달존"이라고 해서 존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세가지를 겸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임금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지혜와 경륜을 쌓은 그들에게 먼저 조언을
구했다.

인사에서도 무엇보다 연공서열이 중시됐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관료들은 70이 넘으면 물러나기
를 자청해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이처럼 연로한 전.현직 고위 문신들의 친목도모를 위해 영조때인 1765년에
설치한 관서가 기로소다.

고려때부터 있었던 문신들의 친목기구인 기영회를 관무서열 1위로 독립시킨
것이다.

태조 숙종 영조 고종은 기로소에 들어간 왕들이고 조선 전대를 통틀어 모두
7백여명이 이곳에 들어갔다.

기로연은 70세가 넘은 원로문신들을 위해 국가에서 해마다 봄 가을 삼짇날
(3월3일)과 중양절(9월9일)에 동대문밖 보제루에서 열어 주던 큰 잔치를
말한다.

투호놀이도 하고 풍악과 춤을 곁들인 경로잔치였다.

옛 기로연의 모습은 김홍도의 "기로세련계도"등에 전해오고 있다.

성균관이 오는 19일까지 서울 양천향교등 전국16개 향교에서 1백여년만에
재현한다는 "기로연"은 물론 옛날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

본래 "기"란 70노인을 뜻하고 "노"란 80노인을 뜻하는 것이니 현대의 소외된
노인을 위한 경로잔치라는 점에서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철을 앞두고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벌이는 노인잔치는 오해를
살 소지도 많다.

노인복지문제도 개선되지 않은 판에 기로연의 재현이 그토록 급한 것일까.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