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이 여야 정치인의 집단이기주의에 강력히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후련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총선연대 시민단체를 홍위병에 비유하며 반감을
느끼는 사람 또한 많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새 피"라는 사람들이 대개 운동권 출신인 점도 사람들을 식상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새틀 짜기"에서 선거의 본론인 "알맹이" 즉 정책
쪽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국 개업의사들이 오는 17일 의료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동맹 휴진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이번 선거를 앞두고 제기될 수 있는 정책과제중 의료제도 개혁이
첫번째로 공론화될 가능성이 보인다.

이들은 사업면허 일제 반납과 의료대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무기한 폐업까지
불사한다는 강경 자세다.

이에대한 여당의 입장은 분명하다.

의약분업, 의보통폐합, 포괄수가제 등을 강행해 영국, 캐나다 등지의 중앙
집중식 관료제, 즉 의료에 관한 한 능력에 따라 내고 필요에 따라 거두는
제도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물론 대부분의 부담이 의사와 봉급생활자들에게 지워짐을 뜻한다.

이에 대해 야당에겐 기본적으로 세 가지 대안이 있다.

첫째는 현제도의 유지다.

그러나 이를 택하면 보험기금의 고갈로 붕괴위기에 처한 지역의보가 문제가
되고 의보 갹출금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

둘째는 미국식 개인별 사보험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고
의료비가 급증하게 된다.

셋째 방안은 싱가포르식 메디칼 세이빙스 어카운트(MSA), 즉 의료저축예금제
시행이다.

우리정부도 이미 이 방안을 채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목돈이 들어가는 중병에 대해서만 보험에서 충당하고 나머지 소액
의료비는 각자 개인이 가입해 사망 후 상속도 되는 의료저축예금에서 지출
토록 하는 방식이다.

빈민과 노약자는 세금으로 보조해준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환자가 왕이 되고 의사는 보험회사나 관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양심대로 환자를 돕게 된다.

과소비 진정과 의료기관끼리의 경쟁 덕분에 의료비 부담도 싱가포르 식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 정도에서 안정된다.

우리의 경우 현재 GDP의 6% 이상을 의료비로 쓰고 있으니 부담이 줄든지
의료의 질이 급속히 좋아질 것이다.

각 병원들은 진료 전에 의료비를 상세히 게시하고, 애프터서비스도 하게
된다.

방만한 경영을 일삼던 관료기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한국의 의료비 부담은 20여 년 전 의보제가 처음 실시된 이래 매년 20%
안팎씩 급증했다.

이에 비해 개개인의 평균 갹출금 부담은 GDP성장률 수준으로 증가됐다.

당연히 의보재정은 시간이 갈수록 쪼들리게 됐다.

부족분은 의사들의 희생, 서비스 질 저하, 과잉검사, 과잉진료, 과잉투약,
비급여서비스에 대한 바가지 요금 등으로 충당될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을 저버리고 환자들은
의사를 불신하고 의사를 기능공쯤으로 비하해 보게 됐다.

이는 인성과 지식을 겸비한 의사들의 위상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약값 마진마저 정부의 지난 11월 의보 약값 30% 인하조치로
완전히 사라져 의보가 적용되는 과목 관련 의사들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게
됐다.

1990년 6% 대였던 의원 도산율이 97년 10%로 높아진 데 이어 이제는 아예
동네의원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될 전망이다.

의사들로서는 더 이상 물러날래야 물러날 자리가 없는 실정이다.

환자들은 환자대로 지금보다 더 짐짝처럼 취급될 것이다.

급행료와 온갖 변태적 의료행위도 난무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의보개혁은 이번 총선의 최대 쟁점이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