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 서울대 교수 / 국제지역원장 >

필자는 연초에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증권거래소 거래대금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코스닥 거래대금이 올해 안으로 거래소 규모를 돌파할
것이라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좋게 깨졌다.

코스닥 거래대금은 불과 한 달 남짓 흐른 지난 8일 4조8천7백79억원을
기록함으로써 거래소의 3조5천7백40억원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코스닥의 고속성장에 대한 일반인들의 견해는 우려와 낙관으로 양분된다.

코스닥의 연간 거래회전율은 세계 최고인 1천1백%로 2위인 미국 나스닥의
3배 수준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그래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나스닥이 거래량 거래대금 거래회전율 등 싯가총액을 제외한 모든
기준에서 뉴욕 증시를 능가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코스닥이 거래소를
능가하는 것은 대세라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다.

코스닥 활황이 거품인가 아니면 대세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선 그 원인이
일시적인가, 구조적인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코스닥을 거래소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코스닥 등록기업의 32%에 해당하는 1백46개 벤처기업의 거래대금은
코스닥 전체의 62%를 차지한다.

따라서 창업 초기에 있는 대부분 회사의 성장률이 높은 것처럼 코스닥의
성장률 역시 높을 수밖에 없다.

둘째, 등록 벤처기업중 대부분은 정보통신과 인터넷 관련 기업으로 이
분야는 성장잠재력이 높다.

셋째, 코스닥의 등록기준이 거래소보다 덜 까다롭기 때문에 위험성은
높지만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기업들이 많다.

넷째, 코스닥에는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가들이 모여 있어
고성장기에는 과열되고 저성장기에는 얼어붙는 현상이 나타난다.

코스닥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의 네가지 구조적 특징을 감안할 때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재 코스닥의 활성화는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만으로는 코스닥 상장기업의 주가가 거래소 상장기업에
비해서 PER(주가수익률)기준 약 2.5배로 고평가돼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즉 아무리 코스닥 등록기업의 성장성이 높고 이에 따라 투자자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성 때문에 주가가 이유없이
높을 수는 없다.

또 시장의 활성화가 투자자의 이익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이들 주가는
결국 거품이며 곧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코스닥 주가가 높은 이유는 코스닥과 거래소에 대한 투자자의 시각
차에서 찾아야 한다.

몇 년전 증권 투자 붐이 일어났을 때, 모 재벌그룹의 창업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종업원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투기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우리 회사 주식을 산
사람들이 불로소득을 올리지 못하도록 하겠다"

이 표현에는 그동안 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던 전통적 재벌기업의 지배
경영자들이 증시 투자자들을 얼마나 못마땅한 존재로 보고 있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동안 주로 거래소에 상장돼있는 한국기업의 지배경영자들은 이익극대화를
경영권에서 찾았다.

그런데 주가가 너무 높게 형성되면 증자시 창업자들이 지분율만큼 참여하기
가 어렵다.

그러면 이들의 지분율은 하락하기 십상이다.

50%가 안되는 지분율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경영자 입장으로서는 조금만
방심하면 그동안 정성들여 키워온 회사를 하루아침에 뺏긴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들은 위장분산을 해서라도 지분확보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주가관리를 통해 주가가 너무 높게 형성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코스닥의 중심세력인 벤처기업 경영자들도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거래소 상장기업의 경영자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다.

이들은 애초부터 경영권이 주는 각종 혜택이 아닌,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격상승에서 오는 재산형성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들은 증시에서 회사 가치를 높여 비싼 값을 형성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한다.

이런 입장에서 증시의 투자자들은 불로소득을 노리는 경계대상이 아니라
같은 배를 탄 동지인 셈이다.

투자자들은 이같은 두 증권시장의 차이, 즉 거래소 상장기업의 경영자들은
자신을 제로 섬 게임의 적으로 경계하고, 코스닥 등록기업의 경영자들은
자신을 윈윈 게임의 동지로서 대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의 가치를 자산가치나 과거와 현재의 수익가치와 같은 전통적인
잣대만으로만 보면 코스닥 기업이 거래소 상장기업보다 2.5배 정도 비싸지만
그 차이는 경영자들이 가진 투자자들에 대한 심리적인 자세로 인한 것이다.

요컨대 코스닥의 주가는 상장돼 있는 기업 경영자들의 자세에 대해서
정당하게 평가한 결과이다.

따라서 거래소 상장기업의 경영자들은 코스닥 주가가 과대평가돼 있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다.

그동안의 주가관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자신들이 경영하는 기업의 주가를
코스닥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전제로서 경영권이 주는 각종 혜택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주가상승을 통해 기업의 싯가총액을 높이고 이에 따른 개인 자산의
증대를 추구해야 한다.

< cho@ips.or.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