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깊어
길은 벌써 끊어졌는데
차마 닫아걸지 못하고
그대에게 열어둔
외진 마음의 문 한 짝

헛된 기약 하나
까마득한 별빛처럼 걸어둔 채
삼경 지나도록
등불 끄지 못하고

홀로 바람에 덜컹대고 있는
저 스산한 마음의 문 한 짝

조향미(1961~) 시집 "길보다 멀리 기다림은 뻗어 있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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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먼 곳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대에게 열어 둔 외진 마음의 문 한 짝"은 차마 닫아 걸 수가
없다.

그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믿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별빛처럼 걸어둔" 헛된 기억이라든가 "홀로 바람에 덜컹대고
있는 저 스산한 마음의 문 한 짝"이라는 표현이 좌절된 사랑의 아픔을
감동적으로 드러낸다.

아픔은 때로 아름다움이 되기도 한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