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것 만큼 속이 상하는 일은 없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만큼 빠르게 변하는 요즘
같은 시절엔 특히 더하다.

뭔가 튀지 않고서는 주목받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들 안달이다.

평범하지 않으려고 또는 적어도 평범해 보이지 않기 위해 땀을 흘리고
화장질을 해댄다.

평범한 것이라면 일상을 빼놓을 수 없다.

매일 똑같은 사람, 반복되는 일과.

느릿느릿 지나가는 시간마저 지루하고 짜증나게 만든다.

그러나 일상이 마냥 따분한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비일상이 숨겨져 있다.

대부분 알지 못한 채 지나칠 뿐이다.

19일 개봉되는 "플란다스의 개"는 그 일상속에 감춰진 비일상에 주목한
코미디 영화다.

사회지도층의 겉다르고 속다른 모습을 일상속에서 들춰낸 단편 "지리멸렬"
(1995년)로 이름난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봉감독은 따분한 일상을 소재로한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뒤엎는다.

늘어지게 하품하던 일상의 뒷면에 카메라를 들이대 사람들을 화들짝 깨우는
비일상의 너털웃음을 낚아챈다.

중산층 아파트에 사는 윤주(이성재).

두살 많은 아내에게 얹혀 사는 인문계 대학원생이다.

교수임명을 기다리지만 로비할 돈이 없다.

산달이 가까운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인 그는 초조하고 짜증나는
나날을 견딜수 없어한다.

이웃집 강아지 짓는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급기야 강아지 한마리를 붙잡아 아파트 지하실에 가둔다.

강아지를 찾으려는 아이를 본 아파트 관리실의 경리직원 현남(배두나)의
얼굴엔 화색이 돈다.

"강아지가 없어졌다고? 이 무슨 신나는 일이냐"

잡화점의 친구 뚱녀와 전화로 낱말맞추기를 하며 시간을 때우곤 하던
현남은 들뜬 마음으로 온동네에 전단을 붙인다.

용감한 시민상을 타서 TV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 현남으로선 일생일대의
기회다.

지하실에 가둔 강아지가 성대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전단을 보고 안 윤주는
또다시 아랫층 할머니가 기르던 강아지를 납치, 아파트 옥상에서 던져버린다.

이를 목격한 현남은 뚱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잔인한 사내의 뒤를
쫓는다.

영화는 여느 코미디물과는 좀 다른 표현방식을 따른다.

일상의 느린 걸음으로 걷던 카메라는 갑자기 호흡을 멈추고 만화적 상상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리곤 이내 일상에 발을 내딛는다.

강아지를 던진 사내를 쫓던 현남이 갑자기 열린 아파트 문에 부딪쳐 천천히
넘어지는 장면, 현남이 강아지를 찾겠다는 결심을 하는 장면 등이 좋은 예다.

일상과 비일상이 사실은 경계없이 혼재되어 있듯이 환상과 상상의 세계
역시 현실과 뗄수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투다.

정교하게 배치된 에피소드들은 끝없는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그 에피소드엔 짜여진 일상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가시돋힌
독설도 담아낸다.

찌그러진 지식인 캐릭터를 소화한 이성재의 연기변신이 새롭다.

정의감이 넘치는 씩씩한 이웃처녀역의 배두나는 좋은 배우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