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클 양 <미국 드림랏닷컴 대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마이사이몬(MySimom.com)이라는 비교구매 사이트를 지난달 7억달러에 매각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영웅으로 떠오른 마이클 양(38).
그는 성공적인 기업매각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다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인터넷상에서 역경매방식에 의한 자동차판매를 중개하는 드림랏닷컴(Dream
lot.com)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당장은 이 사업에 전념해야 하므로 여력이 없지만 2001~2003년에
한국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14살 때 미국으로 이민가 지난 70년대 미국의 벤처현장을 보고 자랐다.
"나도 나중에 크면 정보통신을 하겠다"고 결심, UC버클리대학과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84년에 벌써 인트라넷과 e메일을 사용하던 제록스 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삼성아메리카에 근무하면서 MBA(UC버클리대)를 받았다.
인터넷 바람이 실리콘 밸리를 뒤덮던 98년 3월 재즈멀티미디어사를 나와
인터넷사업을 구상했다.
"인터넷에는 좋은 정보가 많지만 어떤 웹사이트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는 부인의 불평을 듣고 쇼핑할 때 가격비교를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사업을 시작하려 할 때 몇몇 가격비교 사이트가 있었으나 상점이나
상품수가 너무 적어 비교다운 비교가 어려웠다.
예컨대 VCR은 있는데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정보는 없는 식이었다.
이때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던 윤여걸씨를 영입해 인텔리전트
쇼핑에이전트라는 비교검색 엔진을 개발했다.
마이사이몬이라는 웹사이트 이름을 지을 때도 신경을 많이 썼다.
미국인들에게 똑똑한 아이의 상징으로 통하는 "사이몬(Simon)"이라는 이름에
좀더 개인화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마이(My)"라는 접두사를 붙였다.
이는 그의 첫이름 마이클과도 연관이 있는 단어였다.
그가 동분서주하며 4차례에 걸쳐 엔젤투자자와 벤처캐피털 자금을 끌어들여
나스닥에 상장시키려는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세계적 투자은행들이 사겠다고 달려들었다.
5억~6억달러로 회사가치를 평가했다.
이러던 중 C-net에서 6억5만달러에 인수를 제의해왔다.
"상장하는 데 거의 문제가 없었으므로 중간에 M&A를 피하려 했으나 상장이후
6개월간 주식을 못 팔기 때문에 차라리 비싸게 달라고 할 때 팔기로 하고
C-net주식과 교환했다"는 게 그의 매각동기.
인수발표 이후 C-net주식값이 올라 매각가격이 7억달러에 이르게 됐다.
이 가운데 마이클 양의 지분은 17%로 1억2천만달러의 거금을 움켜쥐게
됐다는 것.
그는 인터넷 거품론에 대해 "인터넷은 혁명적 변화며 기존산업의
비즈니스플랜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인터넷에서는 1등만 살아남는다는 진단에 대해서도 "시장만 크다면 1%의
시장점유율만 갖고도 큰 부를 이룰 수 있다"고 장담했다.
< 새너제이(미국)=안상욱 기자 sangwoo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8일자 ).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영웅으로 떠오른 마이클 양(38).
그는 성공적인 기업매각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다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인터넷상에서 역경매방식에 의한 자동차판매를 중개하는 드림랏닷컴(Dream
lot.com)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당장은 이 사업에 전념해야 하므로 여력이 없지만 2001~2003년에
한국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14살 때 미국으로 이민가 지난 70년대 미국의 벤처현장을 보고 자랐다.
"나도 나중에 크면 정보통신을 하겠다"고 결심, UC버클리대학과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84년에 벌써 인트라넷과 e메일을 사용하던 제록스 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삼성아메리카에 근무하면서 MBA(UC버클리대)를 받았다.
인터넷 바람이 실리콘 밸리를 뒤덮던 98년 3월 재즈멀티미디어사를 나와
인터넷사업을 구상했다.
"인터넷에는 좋은 정보가 많지만 어떤 웹사이트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는 부인의 불평을 듣고 쇼핑할 때 가격비교를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사업을 시작하려 할 때 몇몇 가격비교 사이트가 있었으나 상점이나
상품수가 너무 적어 비교다운 비교가 어려웠다.
예컨대 VCR은 있는데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정보는 없는 식이었다.
이때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던 윤여걸씨를 영입해 인텔리전트
쇼핑에이전트라는 비교검색 엔진을 개발했다.
마이사이몬이라는 웹사이트 이름을 지을 때도 신경을 많이 썼다.
미국인들에게 똑똑한 아이의 상징으로 통하는 "사이몬(Simon)"이라는 이름에
좀더 개인화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마이(My)"라는 접두사를 붙였다.
이는 그의 첫이름 마이클과도 연관이 있는 단어였다.
그가 동분서주하며 4차례에 걸쳐 엔젤투자자와 벤처캐피털 자금을 끌어들여
나스닥에 상장시키려는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세계적 투자은행들이 사겠다고 달려들었다.
5억~6억달러로 회사가치를 평가했다.
이러던 중 C-net에서 6억5만달러에 인수를 제의해왔다.
"상장하는 데 거의 문제가 없었으므로 중간에 M&A를 피하려 했으나 상장이후
6개월간 주식을 못 팔기 때문에 차라리 비싸게 달라고 할 때 팔기로 하고
C-net주식과 교환했다"는 게 그의 매각동기.
인수발표 이후 C-net주식값이 올라 매각가격이 7억달러에 이르게 됐다.
이 가운데 마이클 양의 지분은 17%로 1억2천만달러의 거금을 움켜쥐게
됐다는 것.
그는 인터넷 거품론에 대해 "인터넷은 혁명적 변화며 기존산업의
비즈니스플랜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인터넷에서는 1등만 살아남는다는 진단에 대해서도 "시장만 크다면 1%의
시장점유율만 갖고도 큰 부를 이룰 수 있다"고 장담했다.
< 새너제이(미국)=안상욱 기자 sangwoo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