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정부는 21일 당초 예정됐던 국고채 발행을 취소하고 대신 1조원 규모의
외평채 발행에 나섰다.

경상수지를 적자로 돌린 주범으로 지목된 환율을 잡기 위한 포석이다.

그러자 금리가 울어댔다.

이날 3년만기 회사채 금리는 한자릿수로 내려앉은지 일주일도 안돼 다시
두자릿수(연 10%)를 위협했다.

정부가 금리안정을 위해 원화가치 하락을 용인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어느
정도 금리인상을 허용하면서 적정환율을 유지하는 쪽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선회했다는 해석이 시장에 나돌았기 때문이다.

금리를 잡자니 환율이 울고 환율을 잡자니 금리가 우는 형국이다.

이날 외평채 발행물량이 당초 예상에 못미치는 7천억원에 그친 것도 침체된
시장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였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면서 주가가 흔들리는 점도 당국의 고민을
가중시키고 있다.

원.달러환율이 급등하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투자자들이 팔자우위로
돌아서 주가가 급락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4일 정부가 국책은행을 동원해 외환시장에 개입해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연초부터 견지해온 매수우위에서
매도우위로 방향을 바꿔 화답했다.

이는 지난주초 주가하락을 이끈 요인이 됐다.

정부는 최근까지 금리를 내리고 물가를 잡기 위해 원화가치 하락을 용인하는
모습이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플레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 입장에서 원화절상은
되레 반가운 손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1월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환율관리에 비상이 걸리자
정책기조를 뒤집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금리-환율-주가"란 세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당국이 줏대없이 움직일
때마다 시장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원화절상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정부의 노골적인 개입에 따른 가파른 원화
절하도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더욱이 지표를 인위적으로 억누를수록 일단 구멍이 뚫리면 한쪽 방향으로
급격히 쏠리기 마련이다.

단번에 시장의 안정을 위협할 수도 있다.

세마리 토끼사냥을 포기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당국이 시장을 존중해 가며 더욱 세련된 정책수단을 구사해 주길 기대해
본다.

< 유병연 경제부 기자 yooby@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