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의 작은 마을인 신핑춘(신평촌) 시장에서는 런민삐(인민폐)가
쓰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이 마을에서만 통용되는 "춘삐(마을돈.촌폐)"로 물건을 사고 판다.

춘삐는 춘 정부가 주민들의 인민폐를 받고 대신 같은 액수로 지급한 일종의
화폐.

지면에는 "신평촌민주재무국"이라는 직인도 찍혀있다.

한 국가내 또 다른 경제단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신핑춘은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게 사기였다.

춘 정부를 이끌고 있는 당서기가 주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인민폐를 모두
빼돌렸다.

그는 춘삐를 제시하며 인민폐를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오리발을 내밀었다.

중국 경제일보는 "지방 토호(토황제)가 달콤한 말로 우매한 주민들을
송두리째 속인 희대의 사기극"이라며 이 사실을 전했다.

신핑춘의 사례는 중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관리들의 부정부패의 한 단면이다.

중국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게 되는 부정부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링시아(령하)자치구의 한 현급 도시에서는 고위간부가 9살짜리 아들을
공무원으로 채용, 매달 3백40위안(1위안=약 1백40원)의 월급을 챙겼다.

허난(하남)성의 한 국유기업은 직원들을 3개조로 나눠 1달간 무임 휴가를
보내고, 그들의 월급 11만위안을 간부들의 관광비용으로 쓰기도 했다.

중국정부는 부정부패 퇴치를 위해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법을 적용한다.

최근에는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후창칭(호장청) 전 장시(강서)성 부성장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95년부터 4년간 90차례에 걸쳐 산하 국유기업으로부터 5백44만
위안의 뇌물을 상납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의 불타는 전의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기업간 부패의 고리가 워낙 뿌리깊고, 일부 관리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있다고 중국 언론들은 한탄하고 있다.

"중국의 부정부패는 공산당이 자기정화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한 교수의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걸까.

<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