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증권거래소가 상장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시장 활성화에
나선 연유는 명백하다.

인터넷 생명공학 등 벤처기업들의 열풍을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만큼
그동안 매우 엄격하게 유지되어온 거래소 상장요건을 완화해 다수의 유망
벤처기업을 유치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같은 정책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거래소 시장은 코스닥 시장과 경쟁관계가 아닌 보완관계라는 점을 우선
명백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은 분명 경쟁관계라 하겠지만 거래소와 코스닥은
증권회사를 공동의 회원(주인)으로 하고 있을 뿐이어서 기업유치 문제를
둘러싸고 다투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거래소가 벤처기업 주식을 거래하는 별도의 소속부를 개설하게 되면 이는
코스닥 시장을 또하나 개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뉴욕거래소에는 스페셜리스트( specialist )라는 중개인들이 있고 이들이
거래소 회원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자동거래시스템
(나스닥)이 생겨났지만 우리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우량가치주 시장"으로서 거래소가 갖는 고유기능을 외면하고 "위험시장"인
코스닥을 모방한다면 이는 투자자들의 선택 폭만 좁힐 뿐이다.

일부 상장기업들이 거래소시장의 침체를 원망한다지만 이는 상장기업
스스로의 노력부족에도 적지 않은 원인이 있다.

코스닥 기업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기업설명회를 갖고 있지만 거래소 기업
들은 다만 투자자들이 제발로 찾아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부인
하기 어렵다.

액면분할 무상증자등 주가관리 노력이 부족하고 점심시간 휴장등 서비스
부족에 문제가 있는 것일 뿐 투자할 만한 기업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실제로 거래소에는 코스닥의 인기주들보다 내용이 더욱 알찬 성장기업들이
적지않고 주가 역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음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 하나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시장의 호황과 불황은 언제나 기복과 유행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벤처기업들이 무작정 각광받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거품이 꺼질 수도
있고 그리 되면 투자자들은 "보다 안전한" 거래소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거래소가 우량가치주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한다면 그때 투자자들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상장기준 완화가 세계적 추세라고는 하지만 최소한에 그쳐야 할 것이고
그보다는 수수료를 내리고 배당률을 올리는등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