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교수 / 경제학 >

세태변화의 큰 흐름은 당대의 섣부른 판단을 부정한다.

지난 천년간 인류사의 가장 큰 변화중 하나는 산업혁명이었다.

당시 시대 흐름을 예견하고 합당한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한 저서로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이 칭송된다.

그러나 스미스 자신은 산업혁명의 대변인인줄 몰랐다.

국부론 저술 당시는 물 흐름의 낙차를 이용해 얻은 동력에 의존하던 시대
로서 큼직한 공장다운 공장은 별로 없었다.

기술혁신도 아직 단발적이었다.

작은 변화들이 누적돼 큰 변혁을 이루며 경제사회 전부문으로 확산됐다.

"산업혁명"이란 말 자체도 백년 이상 지난 다음에 A 토인비("역사의 연구"
저자 A J 토인비의 숙부뻘)의 저서(1884년) 이름에서 연유되었다.

대변혁의 성격규명에 한 세기가 소요된 셈이다.

요즘 한국사회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모두가 혼돈과 착시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에 대변혁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이지만, 그 성격이나
방향 및 영향은 아직 분명하게 판가름하기 어렵다.

변화의 시대에 사는 첫번째 슬기는 유연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지 근거
불명한 확신에 기대할 바 아니다.

확신이란 흔히 정치적 종교적 열정이나 계층적 이기주의에 오염되는 경향이
있어 시대를 오판하고 사회를 오도할 공산이 크다.

두번째 슬기는 행동의 박차를 한 템포 늦추는 것이지, 빠른 세태를 빨리
따라 가는 것이 아니다.

불과 2년여 전에 경제위기의 벼랑위에 서서 국제통화기금의 긴급 지원금융을
받아들여야 했던 처절한 낭패감이 어줍잖은 자신감으로 변모하고 있다.

8백억달러 수준에 근접하는 외환보유고를 믿는 탓인가.

30여년전 적정외환보유 수준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논의가 활발하던 시절에
프린스턴 대학의 마클럽( F Machlup ) 교수는 자기 부인의 옷장에 비유해
설명했다.

몇 벌의 옷이 있어야 만족하는가는 부인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외환위기의 재연을 방비하는 지름길은 결국 심리전에서 이기는데 있다.

국경이 무의미한 시대에 외국자본가나 투기자들의 마음이 한국에 머물도록
잡아두려면 경제의 펀더멘털즈도 튼튼해 이익실현의 기회가 보여야 할 뿐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의 제도와 관행이 이들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

그들 입맛에 맞는다면 외환보유 수준이 지금의 절반이라도 충족하지만,
아니라면 두 배로도 부족할 것이다.

보유 달러를 바벨탑처럼 축적하는 것은 하책이고 그 운용의 효율화를
도모하는 것은 중책이다.

상책은 역시 심리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도록 우리의 제도와 관행을
일신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간의 개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정부의 요란스런 발표들은 많았으나 유감스럽게도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족할 만큼 바뀌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후퇴 역진한 부분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금융부문이다.

통폐합 등 구조조정, 지배구조혁신 등 외형상 돋보이는 변화 등이 있었지만
이를 압도하는 관치금융의 위세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고, 재경부도 옛버릇을 잊지
않고 있다.

국유화 은행은 물론 민간금융기관들도 손발이 묶여 자율경영이 아직
요원하다.

중앙은행은 정부의 손짓에 맞추어 유동성공급에 치중하고 물가안정이란
본연의 임무를 기피하고 있다.

산업정책도 그렇다.

과거 정부는 대기업 중심으로 중화학공업 육성에 치중해 성과도 있었지만
해당기업들이 과도한 부채비율로 도산위기에 몰리도록 방임한 과오가 있었다.

관료가 성공한 사업을 골라내는데 기업가보다 뛰어나다는 확신은 언제나
위험스럽다.

현정부는 대기업을 누르고 중소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특히 "벤처"라는 이름의 기업을 선호한다.

벤처기업은 말 그대로 실패 리스크가 높아 성공확률이 낮은 사업에 승부를
거는 기업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인정하는 제도를 만들고 지원하는 기금을 만들었다.

민간의 돈이 여기에 몰리게 한다.

요즘 관료는 과거보다 영험이 뛰어난 점쟁이인 모양이다.

게다가 뒷돈까지 대주는 전주노릇을 자처하고 아예 5천개 또는 2만개의
벤처를 키우겠다고 선언한다.

이래서 시중에 돈이 넘치고, 봉이 김선달이 춤추고, 코스닥이 널뛴다.

조만간 마각을 드러낼 터이고 자칫 다시 심각한 경제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옳은 방향의 정책도 균형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

시민단체가 대거 뛰어든 정치판도 나아진 게 없다.

기존 정치판을 뒤엎겠다는 의욕은 좋으나 법 테두리를 벗어나도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나쁜 법도 법이다.

법을 벗어나면 아나키밖에 없다.

아나키는 누구도 원치 않는 독재를 부른다.

절제된 행동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앞으로 한세기 후 요즘시대의 평가가 궁금하다.

조급한 시대, 과오반복의 시대로 낙인찍힐까 두렵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