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아니고 세계적인 업체 두개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국내 자동차산업은
과연 어떻게 될지 밤에 잠이 오지않을 정도로 걱정입니다"

대우차 입찰의향서를 제출한 다음날인 23일 현대자동차의 한 고위임원이 한
말이다.

만약 대우가 해외업체에 넘어가고 삼성도 르노에 인수될 경우 순수국산차의
입지가 극도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현대자동차를 휩쓸고있다.

토종차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현대의 초조감은 가차없는 인력감축, 공장폐쇄
등 "GM 해외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친 이례적인 보고서를 내놓을 정도로 절박
하다.

현대는 외국차업체의 한국진출이 어쩔수 없는 대세라고 보고 최대한
우호적인 파트너를 잡기위해 분전하고 있다.

지난달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GM이 연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사의
대우차인수를 대세인양 몰아가자 현대는 포드의 기자회견을 주선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현대는 당시 국제관례를 무시하고 즉석 통역까지 맡았다.

GM을 견제하기 위해 포드가 대우차 인수에 대한 분명입장을 밝혀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포드는 현대와의 제휴를 확실히 기약하지않았고 현대의 고뇌는
깊어만 갔다.

그 이후 현대가 대우차 입찰에 대해 "현대답지 않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준 것도 현대의 고민을 짐작케해주는 대목이다.

대우차 입찰제안서를 받았는지 그리고 의향서를 제출했는지 일절 언급이
없었다.

기자가 다른 루트를 통해 현대가 대우차 관련 5개사를 일괄 인수하겠다는
의향서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현대측은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현대의 이런 침묵은 세계차업계의 질서재편에 대응해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의 진통과 고뇌가 그만큼 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우차 인수에 대해 우선 정부가 달가워하지 않는데다 독점을 우려하는
일부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크게 떠들 입장도 못된다.

기술력 경영기법을 비롯한 경쟁력에서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르노
피아트 등 한국시장을 노리는 어느 업체도 결코 만만한 존재들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불과 3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세계 7위의
대국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현대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평소 현대답게 좀더 의연하게 대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기자의 무리한
욕심일까.

< 김용준 산업부 기자 juny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