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도은 < 본사 논설고문 >

2월은 우리 생활에서 큰 행사 하나가 있는 달이다.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는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모두 이 무렵에 있다.

그런 다음에는 또 신입생을 위한 입학식이 이어진다.

이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대학이다.

평생교육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대학을 나오면 일단 현실사회에 진출할
채비가 끝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매년 있는 각급 학교의 입학과 졸업시즌을 맞아 대학에 특히 눈길을 주는
것은 올해 졸업과 입학행사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거나 혹은 대학교육이
변해서가 아니라 취업전선의 변화를 말하고 싶어서다.

변하기로 말하면 우리네 교육도 정치 못지않게 좀체 변하지 않거나 아주
더디게 변하는 분야에 속한다.

대학도 그 하나다.

실은 대학이 변하지 않으니까 초.중.고 교육도 변하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나온 고학력자의 취업전선만은 변하고 있다.

대학과 졸업생들이 미처 좇아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물론 변화는 대졸 고학력 취업전선 뿐이 아니다.

노동시장 전체가 변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고학력 취업시장의 달라진 모습이다.

변화는 수요와 공급 쌍방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수요
쪽이다.

그 쪽이 먼저다.

시장의 수요 변화에 공급, 즉 대학과 대졸자가 반응한다.

우리 노동시장의 최근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평생직장의식의
퇴조라고 봐야 한다.

기업입장에서나 사원 모두 이제 평생직장 사고는 엷어져 있다.

이런 분위기는 IMF위기를 계기로 예상보다 빨리 찾아 왔다.

부도사태와 명퇴바람 속에서 평생직장 얘기는 의미가 없어졌다.

사원들도 굳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경향이다.

더 나은 조건, 더 마음에 드는 자리, 보람있는 일을 찾아 언제든지 떠날
여유를 보유하고 싶어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 한 직장만을 지키고 있으면 되레 무능한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세태다.

두 번째는 임금체계의 변화다.

생각만큼 급속하지는 않지만 연봉제와 성과급제가 확산돼 가는 추세다.

고학력 취업자, 전문직, 간부급 임직원의 경우는 처음부터 계약직에다
연봉제로 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현금보수 대신 스톡옵션을 듬뿍
안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변화는 평생직장의식 퇴조와도 관련이 없지 않다.

언젠가는 퇴직금제도가 사라지고 연금으로 완전 대체되는 변화도 올 것이다.

또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되면서 복잡한 각종 수당도 정비될 것이다.

세 번째 변화는 산업구조 변화와 그에 따른 직종의 끊임없는 다양화와
여성인력의 확대다.

지금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와 인터넷
혁명은 산업구조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오고 있다.

공동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제조업이 인력과 자금확보, 수익성과 장래성 등
모든 면에서 밀리고 있는데 반해 전자정보통신과 인터넷 관련 서비스산업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요즈음 하루 평균 1백개가 넘는 신규 창업회사의 대부분은 이 분야 벤처
들이다.

이 같은 변화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직종을 더욱 세분화,
전문화, 다양화하고 있으며 여성인력의 활동영역을 그만큼 넓혀 준다.

급여와 승진 등에서의 성차별 관행도 차츰 개선되고 있다.

아무튼 종래의 1,2,3차 산업분류는 더이상 적절하지 않으며, 새로운 분류
방법이 나와야 할 판이다.

이밖에 기업들의 채용관행이 바뀌어 정시모집 대신 수시 모집, 공채 대신
특채, 인재스카우트가 느는 것도 특기할 변화다.

이 같은 노동시장 변화에 공급 쪽인 대학과 고학력 취업지망자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우선 대기업 선호사조가 차츰 퇴색해 가고 있다.

이는 벤처기업 붐, 그리고 평생직장의식 퇴조경향과도 관계가 있다.

무조건 명문대학, 일류대학보다는 적성에 맞고 장래성 있는 전공학과를
찾아가는 변화도 아직은 좀 이르지만 차츰 확산될 전망이다.

다음은 학력인플레 경향과 영어학습 열기다.

대졸자의 취직이 힘들어지면서 수년 전부터 대학원진학 바람이 일기 시작
했지만 고급두뇌와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앞으로 더욱 불어날 것
같다.

굳이 대학을 나와야 하느냐는 학력디플레 경향도 나올 법 하지만 아직은
이른 감이다.

한편 영어는 장차 외국기업 진출과 자본유입이 늘고 이른바 세계화 국제화가
사회의 모든 분야로 확대돼 가면서 그 중요성이 더해질 것이며, 이를 계기로
영어조기교육과 해외유학 및 연수바람, 그리고 영어공용화 논의에 탄력이 더
붙을 공산이 짙다.

아무튼 빠르게 변하는 사회, 특히 고학력 취업전선에 일고 있는 변화를
남보다 빨리 읽고 대응하는 대학과 인재만이 장차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게 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