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임준수 스크린 에세이) '잔 다르크' .. 인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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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은 중세 유럽에서 자행된 종교적 폭력으로 악명이 높았다.
무고한 여인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음의 형벌을 내린 종교재판은 기독교
역사의 큰 오점이기도 하다.
100년전쟁에서 프랑스군의 승리를 이끈 잔 다르크도 전쟁영웅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마녀사냥의 올가미에 걸려 비극적인 최후를 마쳤다.
화형장의 불길에 휩쌓였을 때의 나이는 꽃다운 19세.
사후 5백년 넘게 프랑스의 문화예술인들이 그녀의 짧은 생애를 미화한
작품들을 쏟아낼 만도 하다.
80년대 영상예술 "누벨 이마주"의 기수로 알려진 뤽 베송이 감독한
"잔 다르크"는 이때까지 보여 온 영화와는 다른 각도로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을 조명하고 있다.
용감한 여전사가 아닌 나약한 인간으로서 갖는 번민과 갈등에 무게를 둔 것.
천군마마를 진두지휘하는 위풍담당함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구도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 바람에 영화의 무게가 더해졌지만 그만큼 지루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는 왕년의 대작 "벤허"나 "십계" "쿼바디스"를 많이 닮았다.
요란한 스펙터클에 경건한 신앙심을 곁들인 점에서 말이다.
이른바 양수겹장을 한 셈인데 볼거리나 재미에선 훨씬 떨어진다.
인간적 고뇌나 종교적 구원같은 고상한 요소들이 영화의 품격을 살렸는지
모르지만 무거운 주제가 스펙터클 사극의 묘미를 깎아먹지 않았나 싶다.
10대 소녀가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알았을 것이며 고뇌를 했다면 얼마나 뼈
아프게 했겠는가.
차라리 정직하게 처녀용사의 무용담으로 했으면 영화의 성격이 확연했을
것 같다.
베송 감독은 주인공의 캐릭터에서도 영웅과 인간 등 두 마리의 토끼를 쫓고
있다.
잔 다르크의 인간적 매력은 종반의 종교재판 때 나타난다.
언니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데 대한 복수심으로 전장에 나섰다는 솔직한
진술이 그런 것이다.
만일 그가 전설 그대로 "신의 계시를 받고 구국전선에 나섰다"고 주장했다면
역사교과서의 따분함만 안겨줬을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잔혹한 살육전을 독려한 자신의 행동에 회의하는 것도
인간적 편모를 느끼게 한다.
주인공은 국난을 타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끝내는 왕실의 버림을
받고 마녀로 몰려 죽음에 이른다.
성장시대의 주역들이 용도폐기 당하는 오늘의 현실은 중세때부터 싹이 텄던
모양이다.
무고한 양민을 죄인으로 덮어 씌웠던 마녀사냥의 악령이 현대사회에선 정녕
사라진 것일까.
< 편집위원 jsr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5일자 ).
무고한 여인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음의 형벌을 내린 종교재판은 기독교
역사의 큰 오점이기도 하다.
100년전쟁에서 프랑스군의 승리를 이끈 잔 다르크도 전쟁영웅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마녀사냥의 올가미에 걸려 비극적인 최후를 마쳤다.
화형장의 불길에 휩쌓였을 때의 나이는 꽃다운 19세.
사후 5백년 넘게 프랑스의 문화예술인들이 그녀의 짧은 생애를 미화한
작품들을 쏟아낼 만도 하다.
80년대 영상예술 "누벨 이마주"의 기수로 알려진 뤽 베송이 감독한
"잔 다르크"는 이때까지 보여 온 영화와는 다른 각도로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을 조명하고 있다.
용감한 여전사가 아닌 나약한 인간으로서 갖는 번민과 갈등에 무게를 둔 것.
천군마마를 진두지휘하는 위풍담당함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구도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 바람에 영화의 무게가 더해졌지만 그만큼 지루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는 왕년의 대작 "벤허"나 "십계" "쿼바디스"를 많이 닮았다.
요란한 스펙터클에 경건한 신앙심을 곁들인 점에서 말이다.
이른바 양수겹장을 한 셈인데 볼거리나 재미에선 훨씬 떨어진다.
인간적 고뇌나 종교적 구원같은 고상한 요소들이 영화의 품격을 살렸는지
모르지만 무거운 주제가 스펙터클 사극의 묘미를 깎아먹지 않았나 싶다.
10대 소녀가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알았을 것이며 고뇌를 했다면 얼마나 뼈
아프게 했겠는가.
차라리 정직하게 처녀용사의 무용담으로 했으면 영화의 성격이 확연했을
것 같다.
베송 감독은 주인공의 캐릭터에서도 영웅과 인간 등 두 마리의 토끼를 쫓고
있다.
잔 다르크의 인간적 매력은 종반의 종교재판 때 나타난다.
언니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데 대한 복수심으로 전장에 나섰다는 솔직한
진술이 그런 것이다.
만일 그가 전설 그대로 "신의 계시를 받고 구국전선에 나섰다"고 주장했다면
역사교과서의 따분함만 안겨줬을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잔혹한 살육전을 독려한 자신의 행동에 회의하는 것도
인간적 편모를 느끼게 한다.
주인공은 국난을 타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끝내는 왕실의 버림을
받고 마녀로 몰려 죽음에 이른다.
성장시대의 주역들이 용도폐기 당하는 오늘의 현실은 중세때부터 싹이 텄던
모양이다.
무고한 양민을 죄인으로 덮어 씌웠던 마녀사냥의 악령이 현대사회에선 정녕
사라진 것일까.
< 편집위원 jsr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