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 평택대 교수 / 문화평론가 >

18세기의 영국.

산업혁명이 처음 일어날 때였다.

농부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변해가는 상황들을 바라보아야 했다.

농부와 양치기들이 들판에서 일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는 철도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철도를 놓는다고 해서 무슨 먹을 게 나올까"
라며 비웃었다.

이윽고 철도 위에 기차가 다니게 됐다.

공장에서 물건이 무더기로 만들어져 시장에 나왔다.

농부와 양치기들은 그들의 노동이 기계에 의해 서서히 떠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수백년 동안 해왔던 농사와 양치는 일이 기계문명에 점령돼어가는
것을 속절 없이 바라만 보았다.

인간노동과 기계노동의 결과물이 생산가치의 빈부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기준틀이 되었다.

역사의 흐름은 인류에게 부의 재편성 기회를 가끔씩 준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나 산업혁명 혹은 베트남전쟁 같은 것이 그것이다.

21세기의 사람들도 이러한 부의 재편성 기회를 맞았다.

그들은 콜럼버스처럼 새로운 대륙을 향해 떠난다.

하나의 도메인으로 자기영토라는 푯대를 박을 수 있는 신대륙.

그들은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무역을 하고 기술을 사고 판다.

이제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던 사람들은 인터넷의 무한광대한 세계
속에서 노다지를 캐는 벤처기업들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테크놀로지는 가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공장주에게 고용돼 일하지 않는다.

새로운 대륙의 서부 개척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당도한 땅은 역사의 혁명을 거치면서 도착한 자유인의
영토가 아니다.

도메인의 주인들은 자신의 삶이 웹의 그물에 압류당해 있다고 느낀다.

인터넷의 속도를 뒤쫓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테크놀로지가 몸에
맞지 않아 삐걱거린다.

이 노다지 광산에서 이루어지는 극단적인 부의 재분배는 확연한 계급화와
계급간의 부조화를 초래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제2의 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자, 인터넷에서 전자거래
를 하는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

누군가는 코스닥에서 큰 돈을 벌고, 누군가는 리어카를 끌며 과일을 팔러
다니며, 하늘에는 컴퓨터로 조종되는 비행기가 난다.

이 엄청난 시간의 간격들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면서 대립적인 것들의 충돌
혹은 병치라는 역사의 협곡에 우리는 놓여 있다.

얼마전 설을 앞두고 한 여성문인이 "나는 제사가 싫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것은 가장 무목적적 인간관계라는 가족공동체 속에서도 조선시대 사람과
근대적 인물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전언해 준다.

평생 문중의 제사를 지내온 전근대와 자본주의의 첨병으로서의 근대,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세례 속에서 살아온 후근대의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시작된다.

이 시대는 기존의 관습과 강요된 속도의 변화가 혼효하며 불편하게 섞이는
불안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근대화 역사가 의식할 수도 없을 정도로 급진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설명해 준다.

아니 이미 우리의 욕망을 앞질러 테크놀로지는 스스로 진행중이다.

과거 세대가 미래 세대와 뒤섞이는 세대들의 충돌, 정보와 지식의 속도로
벼락 부자가 된 코스닥의 주주들, 미래 벤처의 성공신화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현재를 담보잡히는 기업가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이러한 "시간들의 전쟁"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미래의 부는 항상 현재의 빈곤보다 앞서 간다.

속도를 내 따라가지만 결국 다시 현재는 언제나 부족하고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

인터넷의 프로그램은 한달만 지나면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컴퓨터는 6개월이 지나면 중고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테크노춤은 더욱 빠른 비트로 반복적인 춤을 계속하고 있다.

누군가가 우리의 시간을 집어 삼키고 있다.

느릿느릿하게 가던 우리의 시간을 되찾아올 사람은 없는가.

철도 위의 기차처럼 빠른 테크노춤의 속도를 멈추게 할 수는 없는가.

광속은 빛의 시간이다.

인간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됐다.

나의 내면을 살피고 이웃을 돌아보고 가족을 살펴보는 "시간의 컴백"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면의 우물 안에 담겨진 거울을 꺼내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 이것이
광기의 속도전에서 다시 인간의 시간을 회복하는 길이다.

이것이 밀레니엄 버그, 곧 밀레니엄 벌레들의 혼란 속에서 진정한 시간을
되찾는 길이다.

< yhkim@ptuniv.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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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이화여대 국문학 박사
<>이화여대 강사
<>저서:한국 현대시의 어법과 이미지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