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곶이 다리.

조선시대에 건설된 돌다리다.

한양대옆 중랑천에 있는 이 다리는 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왕자의 난"에 분노해 함흥으로 갔다 귀경하던 태조가 태종을 보고 화가
치밀어 활을 쏜 곳이 이 부근이다.

살곶이라는 이름도 그래서 생긴 것.

다리는 태종이 자신의 능행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놓았다.

이동훈(39)씨는 이곳을 종종 찾는다.

역사현장을 둘러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열세살때 고아가 된 그는 다리옆 둔치에서 천막을 치고 살았다.

구멍을 파고 연통을 연결해 온돌을 만든 뒤 가마니를 깔았다.

쓰레기를 주워 파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겨울에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하지만 여름에는 정말 힘들었다.

파리 모기가 들끓었고 장마가 지면 물에 잠겼기 때문.어려웠던 시절인지라
자살하는 광경도 여러 번 봤다.

다행히 이씨는 부근에 있는 동신공업에서 심부름하면서 밥은 먹고 살 수
있었다.

꿋꿋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이영주 동신공업 사장의 보살핌 덕분.

그는 회사가 부도나자 마지막 남은 기계 한대를 이동훈씨에게 줬다.

이동훈씨가 국내 굴지의 타공업체인 성실엔지니어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성실엔지니어링과 계열사인 성실타공을 합친 연매출액은 50억원이 넘는다.

종업원은 35명.

이동훈 사장은 실의에 빠져 있던 이영주씨를 어렵게 찾아내 사업소장으로
모셔와 은혜를 갚고 있다.

중소기업인 가운데는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이 많다.

반디라이트펜을 만드는 세아실업의 김동환(44) 사장도 마찬가지.

아홉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걷는 게 불편하다.

하지만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불이 켜지는 펜을 만들어 2천만달러이상을
수출했다.

밤에도 글씨를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도를 읽고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미군 이스라엘군 일본자위대 등이 반디라이트펜을 수입해 쓰고 있다.

차량용 안전표시판도 개발하는 등 지식재산권 2백여건을 출원했고 이중
1백30여건을 획득했다.

환상적인 실내디자인으로 유명한 데몰리션노래방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알토산업의 김용석(32) 사장.

어려운 가정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고교 2학년때 집을 나왔다.

음식점주방장 웨이터 외판사원 포장마차 등 10여가지 직업을 전전한 뒤 꿈과
환상의 노래방 인테리어업체를 만들었다.

2년만에 전국에 구축한 체인점은 2백여개.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중국과 파키스탄에 기술을 수출하기도 했다.

미래형 테마레스토랑인 "아수라" 사업에도 뛰어들어 10개를 열었다.

이들이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끈이 있었기 때문.

이동훈 사장에게 이영주씨가 있었다면 김동환 사장에게는 부인인 김미숙씨가
있었다.

아내는 집에서의 성실한 내조와 함께 회사일도 돕고 있다.

어려운 사람의 처지는 어렵게 자란 사람이 안다.

이들이 불우이웃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동훈 사장이 서울 대방동의 고아와 소년소녀 가장 10여명에게 생활비를
대주고 인근 성대시장에서 옷을 사서 입히는 것도 사랑의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 김낙훈 기자 n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