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M&A(합병 및 인수)를 제대로 하려면 시스코로부터 배워라"

미국 네트웍장비업체 시스코시스템스가 최근 관련 회사들을 잇달아
합병하면서도 거의 잡음이나 후유증 없이 깔끔하게 인수 작업을 마무리,
업계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이는 기업 상호간의 이질적인 문화 등 갈등구조를 극복하지 못한 채
대부분의 M&A가 실패로 끝나고 있는 업계 현실과 대비되는 것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일 보도했다.

시스코시스템스가 지난해 전격 단행한 광섬유 장비업체 세렌트사의 인수
과정은 이 회사의 "M&A 성공 노하우"가 얼마나 탄탄하게 짜여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수 대금으로 72억달러를 지급키로 하는 등 합병 조건과 관련한 상담을
시스코사는 단 두시간 반만에 깨끗하게 매듭지었다.

그러나 이런 매끄러움의 이면에는 치밀한 사전 정지작업이 뒷받침돼
있다고 월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정 기업을 인수 대상으로 결정하고 나면 즉각 특별 기동팀을 투입, 합병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일일이 짚어본다.

시스코는 이를 전담하는 "합병 작업 전문가"들을 36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같은 풍부한 전문 인력과 관련 시스템을 활용해 세렌트사의
임직원들을 합병 2개월 만에 완전히 동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전원에게 일정 지분씩의 시스코 주식을 배정한 것은 물론 새로운
직위와 보직, 보너스 플랜, 의료 계획 등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함으로써
"시스코 패밀리"라는 동류 의식을 빠르게 심어줬다는 것이다.

그 결과 4백여명의 옛 세렌트사 임직원 가운데 지난달 말 현재 회사를 떠난
사람은 단 네명에 불과하다.

사업은 합병 이전에 비해 더 번창하고 있다.

시스코는 이런 매끄러운 M&A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난 6년 반 동안 51개의
기업을 흡수 합병, 회사를 싯가총액 기준으로 미국 2위로 올려놓았다.

시스코의 M&A 시스템은 최근 경영 컨설팅 회사인 베스트 프랙티스사로부터
"가장 탁월한 M&A 시책을 구사하는 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 M&A 시스템의 경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야후와 US 웨스트 등
유수한 기업들이 "시스코 기법"을 대놓고 연구하기 시작한데서도 입증된다.

심지어 시스코의 라이벌 업체인 루슨트 테크놀러지와 노텔 네트워크 등도
이 회사의 M&A 전략을 모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코가 독보적인 M&A 노하우를 구축한 것은 상당 부분 존 쳄버스 사장의
치밀한 구상 덕분인 것으로 지적된다.

그는 먼저 회사의 장기 경영 구도를 위해 필요한 상품 개발 목록을 마련한
뒤, 그에 대응하는 기업을 순차적으로 인수하는 등 "준비된 M&A"만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지난 93년 9천5백만달러 어치의 주식을 주고 사들인 크레셴도
커뮤니케이션즈사의 스위치 사업부문은 최근 연간 매출이 7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쳄버스 사장은 이같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에도 25개사를 추가로 인수,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