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오기 전에 한바퀴 더 돌아야지"

밤이 깊어갈수록 신부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숭례문상가 대도상가 수입상가...

서울대교구 남대문 준본당 이성원(베드로)신부.

그는 지난해 10월 주임신부로 부임한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지만
아직 4백여 곳밖에 방문하지 못했다.

남대문시장에 입주한 점포는 모두 4만여개.

서울시내 가톨릭 신자가 1백명에 10명 꼴임을 감안할때 남대문 시장의
잠재적인 신자는 4천명 정도다.

그중 성당으로 인도한 신자는 2백여명.

주님의 성전밖에 있는 "양떼"를 "푸른 풀밭 시냇가"로 몰아오는 일이 목자
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신부는 "괴짜"다.

15명의 신자공동체로 출발한 남대문성당이 명동성당 공소(분원)에서
준본당으로 승격될때 담임신부를 자청했다.

"시장판이 저하고 잘 맞아요. 살을 부비고 살아가는 모습이 인간적입니다.
밤과 낮이 따로 없어 불편하긴 해도요"

새벽 5시30분 이 신부는 성당의 다락방에서 몸을 일으킨다.

명동성당 사제관에 더부살이하는 그는 밤새 상가를 돌고 난뒤 다락방에
올라와 전기장판을 깔고 잠시 눈을 붙인다.

가파른 층계창에 두런두런 신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사제는 문앞으로
가서 인사를 한다.

"어서들 오세요"

매주 수요일 아침 6시에 열리는 평일 미사엔 20여명이 참례한다.

15평 남짓한 쪽방에 앉은뱅이 책상을 갖다놓았지만 성수대 감실
(성체모셔둔 곳)등 있을 건 다 있다.

"살기 힘들다고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장사가 안 돼도 행복할 수
있죠. 분주한 장터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인간됨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미사가 끝나면 아침상이 들어 온다.

성당을 돌보는 수녀가 없기 때문에 신자들이 부엌에서 밥을 한다.

신자들과 함께 하는 아침 식사, 생일을 맞은 사람가 있으면 술도 한잔씩
돈다.

"우리 신부님은 신학생때 해방신학을 했대요"

"지금은 아시아 신학에 여성신학까지 나왔어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신부의 목표는 40만원짜리 삯월세 성당을 벗어나는 것.

번듯한 건물을 임대, 사제관을 두고 출퇴근 생활을 청산하는 것이 꿈이다.

성전 마련을 위해 오는 4월 8, 9일엔 명동성당에서 바자도 연다.

신자들과 함께 생활을 나누는 이성원 신부.

그를 만나고 싶으면 숭례문상가 왼편 남이약국 옆 계단을 오르면 된다.

평일미사 화요일 저녁 6시30분, 수요일 아침 6시, 목요일 낮 12시.

(02)779-4772

< 윤승아 기자 a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