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복 < 조흥은행장 ceo@chb.co.kr >

"중앙은행의 긴급조치가 발표됐습니다. 조치의 골자는 내년부터 전자화폐를
유일한 통화수단으로 공식 채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보유하고 있는
모든 통화는 금년말까지 전자화폐로 교환해야만 합니다"

물론 필자의 가상 시나리오다.

그러나 요즘 인터넷 관련사업의 발전속도를 볼 때, 조만간 전자화폐는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을 게 분명하다.

지난 80년대 도입된 신용카드가 불과 10여년만에 소비자금융시장을 획기적
으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전자화폐가 갖는 위력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다.

또 이런 상상도 해본다.

미래의 설날 온 식구들이 집에 모인다.

전자화폐가 보급돼 있으니 빳빳한 새돈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 손 잡고 컴퓨터 앞에 앉아 세뱃돈을 입력해 준다.

고스톱을 칠 때 피박쓰면 수첩보다 훨씬 작은 단말기에 양쪽화폐를
끼워넣고 간단하게 피박값을 이체해 주면 그만이다.

단점은 돈 세는 즐거움과 현찰이 오가는 박진감이 전혀 없어 좀 썰렁하다는
것일 게다.

금융기관에 권총강도가 들어와 돈을 강탈해 갔다거나, 현금수송차량을
덮쳤다는 뉴스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인터넷 산업의 꽃인 전자상거래의 결제가 네트워크상에서 즉시 이뤄지고
유통 교통 의료 행정 복지 금융 등의 정보가 수록된 IC카드가 보급되면 우리
생활은 그야말로 일대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전자화폐시장을 장악하는 자가 네트워크 경제를 지배한다"는
기치아래 기존 금융업계, 컴퓨터산업, 통신산업들이 이 분야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동전과 지폐로 대표되는 통화시장에 이른바 "플라스틱 머니"로 불리는
신용카드가 등장했을때 "화폐의 혁명"이 시작됐다고 평했었다.

이제 "제2의 화폐혁명"이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95년 7월 영국의 남부도시 스윈던에서 "몬덱스카드"라는 전자화폐가 처음
유통된 것이 그 시조다.

전자화폐제도가 국가간의 결제시스템으로 도입되면 국내외 무역 금융질서
등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국가단위의 통화량 조절이 어려워지고 정부의 징세권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정신없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아, 옛날이여"하고 저항하는
태도로는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