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마당] (중기 이야기) '기업인의 예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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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도 험하기로 이름난 K2봉.
밧줄에 몸을 매단 채 빙벽에 기댄 두사람.
밧줄이 모자라 한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몸은 얼어온다.
예술의 전당.
객석을 메운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연극 "K2"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산을 좋아하는 물리학자와 법관이 등정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관객을 더욱 압도하는 것은 거대한 무대장치.일반 연극무대의 2배가 넘는
4층 높이다.
설산과 빙벽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한 것.
무대를 제작한 사람은 일룸의 양영일(51) 사장.
생활창작가구로 잔잔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기업인이자 서울대 공대
연극반 출신의 아마추어 연극인이다.
주방용 레인지후드 업체인 한강상사 이수문(52) 사장.
명성황후, 겨울나그네와 같은 대형 뮤지컬 뒤에는 그의 뜨거운 열정이
스며있다.
그는 낮에는 레인지후드를 만들고 밤에는 뮤지컬 연습장으로 달려간다.
명성황후는 그가 윤호진 단국대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짜낸 작품.
뮤지컬 본고장인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를 한달간 훑기도 했다.
한국의 뮤지컬이 이대로는 안 된다며 극단 에이콤을 탄생시키는 데 일역을
맡기도 했다.
공연기획에 참여하고 스폰서를 구하고 후원하는 등 발로 뛰고 있다.
중소기업인은 짬을 내기가 힘들다.
물건을 만들어 팔고 기술을 개발하고 돈 구하는 일을 일일이 챙겨야 한다.
이런 가운데 예술에 열정을 가진 기업인이 있다.
연극만이 아니다.
성열찬(39) 신복산업 사장.
대표적인 핑거조인트목을 생산하는 기업인이다.
인천 송도성당 지휘자이기도 하다.
글로리아 상투스 등 장엄한 미사곡들이 그의 손끝에서 조율된다.
이번 부활절에 대비해 헨델의 메시아를 준비하고 있다.
클라리넷 주자이기도 하다.
한상량(59) 보워터한라제지 사장의 클라리넷 연주도 수준급.한라펄프제지
사장시절 보워터와 매각협상을 성공시킨 주역이다.
회사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진행된 협상은 살얼음판위에서 밀고당기는
아슬아슬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극적인 타결에 이르게 된 것은 악기얘기가 화제에 오르면서부터.
보워터 임원중 상당수가 악기를 다룰 줄 알았고 보워터 회장 역시 클라리넷
연주자라는 것을 알면서 협상은 급진전됐다.
기업인과 예술.
이들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기업이 국제무대에서 선진기업으로 대접받으려면 기술개발과
좋은 제품 생산 못지않게 문화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게 이수문 사장의
신념이다.
"한국과 이탈리아는 아주 비슷합니다. 지정학적인 면에서나 개개인의
예술성이 탁월한 점에서도 그렇지요. 이탈리아가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산업면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듯이 한국의 문화수준이 올라갈 때 비로소
국내기업이 제대로 대접받는 시대가 열릴 겁니다"
박영주(59) 이건산업 회장이 외환위기 이후 경황이 없는데도 협력업체
임직원과 소년소녀가장을 초청해 음악회를 연 것도 예술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회사안에서 바이올린과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퍼지고 가까운 공원에서
금관 5중주의 힘찬 음색을 듣는 날을 기대해 보자.
< 김낙훈 기자 n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9일자 ).
밧줄에 몸을 매단 채 빙벽에 기댄 두사람.
밧줄이 모자라 한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몸은 얼어온다.
예술의 전당.
객석을 메운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연극 "K2"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산을 좋아하는 물리학자와 법관이 등정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관객을 더욱 압도하는 것은 거대한 무대장치.일반 연극무대의 2배가 넘는
4층 높이다.
설산과 빙벽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한 것.
무대를 제작한 사람은 일룸의 양영일(51) 사장.
생활창작가구로 잔잔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기업인이자 서울대 공대
연극반 출신의 아마추어 연극인이다.
주방용 레인지후드 업체인 한강상사 이수문(52) 사장.
명성황후, 겨울나그네와 같은 대형 뮤지컬 뒤에는 그의 뜨거운 열정이
스며있다.
그는 낮에는 레인지후드를 만들고 밤에는 뮤지컬 연습장으로 달려간다.
명성황후는 그가 윤호진 단국대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짜낸 작품.
뮤지컬 본고장인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를 한달간 훑기도 했다.
한국의 뮤지컬이 이대로는 안 된다며 극단 에이콤을 탄생시키는 데 일역을
맡기도 했다.
공연기획에 참여하고 스폰서를 구하고 후원하는 등 발로 뛰고 있다.
중소기업인은 짬을 내기가 힘들다.
물건을 만들어 팔고 기술을 개발하고 돈 구하는 일을 일일이 챙겨야 한다.
이런 가운데 예술에 열정을 가진 기업인이 있다.
연극만이 아니다.
성열찬(39) 신복산업 사장.
대표적인 핑거조인트목을 생산하는 기업인이다.
인천 송도성당 지휘자이기도 하다.
글로리아 상투스 등 장엄한 미사곡들이 그의 손끝에서 조율된다.
이번 부활절에 대비해 헨델의 메시아를 준비하고 있다.
클라리넷 주자이기도 하다.
한상량(59) 보워터한라제지 사장의 클라리넷 연주도 수준급.한라펄프제지
사장시절 보워터와 매각협상을 성공시킨 주역이다.
회사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진행된 협상은 살얼음판위에서 밀고당기는
아슬아슬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극적인 타결에 이르게 된 것은 악기얘기가 화제에 오르면서부터.
보워터 임원중 상당수가 악기를 다룰 줄 알았고 보워터 회장 역시 클라리넷
연주자라는 것을 알면서 협상은 급진전됐다.
기업인과 예술.
이들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기업이 국제무대에서 선진기업으로 대접받으려면 기술개발과
좋은 제품 생산 못지않게 문화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게 이수문 사장의
신념이다.
"한국과 이탈리아는 아주 비슷합니다. 지정학적인 면에서나 개개인의
예술성이 탁월한 점에서도 그렇지요. 이탈리아가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산업면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듯이 한국의 문화수준이 올라갈 때 비로소
국내기업이 제대로 대접받는 시대가 열릴 겁니다"
박영주(59) 이건산업 회장이 외환위기 이후 경황이 없는데도 협력업체
임직원과 소년소녀가장을 초청해 음악회를 연 것도 예술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회사안에서 바이올린과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퍼지고 가까운 공원에서
금관 5중주의 힘찬 음색을 듣는 날을 기대해 보자.
< 김낙훈 기자 n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