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의 거시경제가 불안하다.

생산과 소비가 늘고 있으나 주식 시장은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또 유가상승과 환율하락으로 물가와 국제수지가 심상치 않다.

대외충격에 취약한 우리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의
펀더멘털을 튼튼히 하는 수밖에 없다.

개혁의 일환으로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으나 첫 단계는 부실
금융회사 정리와 공적자금 투입으로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이는 하드웨어
중심의 구조개혁이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국제 경쟁력의
제고 외에 길이 없음은 자명하다.

정부가 시장에 의한 소프트웨어 개혁인 2차 금융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2차 금융구조조정의 핵심 내용은 정부 주도가 아닌, 즉 시장을 통해서
금융기관간의 경쟁을 촉발시키는 데에 있다.

정부는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하도록 제도의 틀을 만들거나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천만원 한도의 예금액만 보호하고 채권의 싯가평가제를 도입하며 보험료율
의 자유화를 인정하는 것 등 모든 것이 금융기관간의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이다.

은행이 보험상품도 취급하는 방카슈랑스나, 증권사가 고객돈을 다양한
투자수단에 운용하는 랩어카운트( wrap account )를 허용하겠다는 것도
금융기관의 겸업화를 인정해 업종을 넘어선 경쟁을 유발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뜻이 담겨 있다.

이러한 경쟁과정에서 승자가 패자를 흡수 합병해 대형 금융기관으로 거듭
나기를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의 설립을 허용하는 것도 금융기관의 대형화를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이들 정책이 제대로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여전히 여러가지
현실적 한계가 남아 있다.

우선 현실 여건상 시장의 힘을 통한 실질적인 경쟁이 가능한지가 문제다.

정부 뜻대로 새로운 시장질서가 부드럽게 작동할 것 같지가 않다.

그 첫째 이유는 1차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금융권에 부실채권이 많이
남아있고 특히 투신사의 부실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부실을 떠안고도 M&A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우량 금융기관이 있을지
불확실하다.

두번째는 지금의 금융시장 상황이 좋지 못해 금융기관의 부실이 줄지 않는
점이다.

대우채로 인한 대량 환매사태의 위기는 넘겼지만, 대우가 워크아웃에서
회생하지 못할 경우 그 부담은 금융권의 몫으로 남는다.

부실한 투신사가 주식 수요 창출 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해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투신사의 부실이 심화되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져있다.

세번째는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은행들이 사실상 국유화된 상태에서는
책임경영을 수행할 민간 주체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민간의 이윤추구 동기가 주도하는 시장이 없다면 시장을 통한 자율 경쟁이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이와 같은 총론문제를 접어두고라도 경쟁을 유도하는 각론의 대책이 미흡
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예컨대 기준수익률을 산정하는 잣대인 무위험채권이 없고 전문평가기관도
없어 채권싯가평가제가 제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게다가 은행이 보험사에 판매 장소를 제공하는 차원에 머무는 현 제도로는
고객의 호응을 얻는 방카슈랑스도 만들어질 수 없다.

특히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경우에 소요비용이 막대한데다 시중은행은
기존 자회사 방식으로도 소규모 증권사나 보험사를 보유할 수 있어 금융지주
회사가 활성화될 것 같지가 않다.

따라서 2차 금융구조조정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금융기관의 부실을 덜어내는
하드웨어적인 1차 금융구조조정을 빨리 마무리하는 게 급선무다.

나아가 국유화된 금융기관을 조기에 민영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도덕적 해이나 시장기능의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민영화 일정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동시에 주식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증권거래법과 신탁법 등 자산운용관련
법규를 통합하는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근본적으로 금융부실의 해소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은 원인제공자인 실물
경제의 회복에 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기업구조조정을 넘어서서 이제는 산업이나
국가의 경쟁력이 제고되도록 산업구조조정에 노력을 기울일 시점이다.

금융과 실물은 국민경제라는 수레가 잘 굴러가기 위한 양바퀴인 것이다.

< jwkim@hr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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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법대
<>미국 클라크대 경제학박사
<>한국신용정보 사장
<>저서:한국의 금융정책, 세계화와 신인본주의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