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남쪽으로부터 온다.

이즈음 남녘을 찾으면 잔잔한 봄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남도 어디에서나 봄 소식을 접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순천시를 에두른 조계산과 그 산자락에 안긴 선암사는 봄 경치가 으뜸이다.

선암사는 여느 큰 절처럼 절 입구에 상가가 즐비하지 않아 고요하다.

거기에다 자연 상태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어 청정 지역을 뽐낸다.

주차장에서 소롯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측으로 부도밭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맑은 계곡물 위로 무지개처럼 걸려 있는 승선교(보물 제400호)를 만나게 된다.

이 돌다리는 밑동이 자연암반으로 돼 있어 급류에도 휠쓸릴 염려가 없는 견고한 아치형이다.

승선교를 지나면 곧이어 강선루가 나오고 이내 일주문이다.

"태고총림조계산선암사"란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먼저 이끼가 수북히 쌓인 기와와 색 바랜 단청이 천년 고찰의 기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내에는 단아하고 고풍스런 문화재들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선암사3층석탑(보물 제3백95호)심검당 설선당 대웅전 만세루 원통전 불조전.절 마당에 비스듬히 누운 노송하며 하나같이 선암사의 내력을 말해주는 것들이다.

정조 임금이 백일기도 뒤 아들을 얻은 은혜에 보답해 지었다는 원통전은 정자형으로 특히 꽃창호의 장식이 볼 만하다.

절을 빙 둘러가며 조성된 정원마다에는 수령 3백년이 넘는 영산홍과 산철쭉나무를 비롯해 자목련 수국 부용 매화 따위의 꽃들이 봉오리를 부풀리고 있어 봄철과 초여름에는 꽃동산을 이룬다.

특히 선암사는 매화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송이송이마다 고운 옷을 입고 그 화사한 자태를 한껏 드러낸다.

4월 초순이면 절정을 이룬다.

배꽃처럼 흰 백매를 위시해 울긋불긋한 홍매는 복사꽃처럼 곱다.

무우전 뜨락에 앉아 바라보는 매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10여 그루의 매화가 돌담가에 줄지어 서 있다.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는 덕지덕지 묻은 세속의 온갖 때를 깨끗하게 헹궈준다.

선방 뒤쪽으로는 무성하게 자란 차밭이 펼쳐져 있어 절의 운치를 더한다.

차밭을 지나 숲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무우전 부도와 선조암터 부도,고려 중기 대각국사 의천이 머물렀다는 대각암의 부도가 차례로 나타난다.

대각암으로 오르는 길엔 높이 5m 가량의 마애불상도 볼 수 있다.

선암사에서 눈여겨볼 것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는 뒷간(해우소).

말끔하고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지 모르지만 스님들이 가장 아끼는 것이다.

화장실 특유의 불쾌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통바람을 받으며 배설하는 기분이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절의 들머리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달걀 모양으로 쌓은 연못(삼인당)이 있다.

가장자리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신라 경문왕 2년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이라 한다.

조계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이후로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선암사"라는 이름으로 정식 건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순천시 송광면과 주암면 낙안면에 걸쳐 있는 높이 8백84m의 조계산은 전체 면적이 순천시 넓이의 3%를 차지하며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소백산맥의 끝자락이 맺은 이 산은 산세가 그다지 험하지 않으나 굴나무 서어나무 개골나무 갈참나무 나도밤나무 조록싸리 조릿대같은 갖가지 나무들이 울울하게 들어차 있다.

이 산 기슭에는 차나무가 많이 자생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그 맛을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갑자기 문 두드리고 대소쿠리 보내는 데에 놀랐으나 향기롭고 신선한 것 얻으니 옥고보다 낫더라.향기 맑으니 일찍 한식전 봄에 딴 것이요,빛이 고우니 아직도 숲아래 이슬 머금은 듯.돌솥에 솔바람 소리 울고 사기 사발에 젖같은 방울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숲이 울창한 이 산에는 곤충 새 짐승이 많이 깃들여 산다.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벌 나비 딱정벌레같은 곤충 3백82종류를 비롯해 갖가지 동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만 사는 것으로 알려진 박새를 비롯하여 붉은머리오목눈이 검독수리 호반새 꾀꼬리같은 아름다운 새가 둥지를 틀고 있고 늑대 살쾡이 오소리 여우 고라니 담비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갖가지 동.식물을 키우는 이 산에는 골짜기마다 폭포가 있고 맑은 물줄기가 흘려내려 그림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모처럼 선암사를 찾았다면 등산로를 따라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까지 가거나 가까운 낙안읍성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낙안읍성은 성 둘레가 1.4km고 크고 작은 돌을 다듬어 정교하게 쌓아올린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낙안읍성 안에는 초가로 된 옛 주막 형태의 민속식당이 여러 곳 있다.

동동주며 파전 도토리묵 더덕구이 감자탕 아욱국같은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또 성 안 주막거리에는 고흥만의 각종 어패류와 곡성 및 순천에서 나는 봄나물이 미각을 돋운다.

금전산의 석이버섯,백이산 고사리,오봉산 도라지,성안 남대리의 미나리,서내리의 녹두묵(황포묵),북내리의 무 등은 낙안의 8진미로 꼽힌다.

글:김맑음(여행작가) kmur6456@chollian.net

[ 가는 길 ]

선암사는 서울에서 하루에 다녀오기는 빠듯하다.

호남고속도로로 광산톨게이트에서 다시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순천까지 가는데 6시간 이상 걸린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순천 조금 못미처 승주 IC를 지나
우회전하면 선암사 IC를 지나 우회전하면 선암사 가는길이다.

승주 IC에서 선암사까지는 8km.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광주나 진주 마산 지역에서는 하루만에
다녀올 수 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순천행 버스가 있다.

순천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1번 시내버스나 100번 좌석버스를
타면 선암사까지 30분 걸린다.

낙안읍서으로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8백57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