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복 < 조흥은행장 ceo@chb.co.kr >

우리 민족의 특질이 생활속에 원형질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은 아마 말과 음식일 게다.

특히 "언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듯 말에는 우리민족 수천년의 정신구조가 농축돼 있다.

일례로 "ㄹ"로 끝나는 말은 대개 생명력을 뜻한다.

우주의 하늘,달,별,지상의 물,불,시간의 날,달이 "ㄹ"로 끝난다.

생명의 근원인 씨알과 그 생명의 밥줄인 쌀 나물 술 등도 역시 그러하며 사람사이의 말과 글,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얼과 일이 그렇다.

마찬가지로 "ㅇ" "ㅁ" "ㄱ"으로 끝나는 말도 제 각각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말에 못지않게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숫자다.

우리 민족은 유독 홀수를 좋아하고 그중 특히 3을 좋아한다.

우선 태어날 때부터 그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애 낳는 것은 삼신할멈이 점지해 준다고 믿었다.

사는 집은 대개가 초가삼간이고,친한 벗은 삼총사,그 이름들은 삼돌이 삼식이 삼순이 삼월이 등이고,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뛰논다.

간혹 싸움이 벌어져도 단판승부는 없다.

삼세판.

우리 민족 건국신화의 주인공도 세명 즉 환인 환웅 환검이고 제주도의 발생설화 역시 고씨 양씨 부씨 세명이 등장한다.

상고시대의 삼한이 삼국시대,후삼국시대까지 이어져 왔고 민족고유의 신앙 역시 유.불.선 3가지로 대변된다.

그뿐이랴.

경관마저 삼천리금수강산이요 날씨조차 겨울에는 삼한사온 여름에는 삼복더위다.

셋째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가며 시집살이는 벙어리삼년 귀머거리 삼년이 기본.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요즈음은 부엌개 삼년이면 라면 끓인다고 한다).

삼재가 끼였다하면 몸가짐을 삼갔고 재수없는 꿈을 꾸면 침을 세번 뱉는다.

술자리에 지각한 사람은 후래삼배요,3차까지 가야 직성이 풀린다.

독립만세도 33인이 3월1일에 거사하며 만세삼창을 외쳤으니 예사롭지가 않다.

필자가 근무하는 은행도 공교롭게 올해로 창립 103주년이다.

국내기업중 몇 안되게 3세기에 걸쳐 존속하고 있는 기업으로 상서로운 일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제 얼마후면 삼짇날(음력 3월3일)이니,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고 날씨도 화창해져 산에 들에 꽃이 피기 시작하는 때라 하였다.

IMF이후 많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겪어낸 우리 민족앞에 따뜻한 3월의 봄날 같은 나날이 계속되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