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민간 싱크탱크(대형 컨설팅업체)들이 벤처캐피털의 옷을 입고 있다.

일본 최고의 싱크탱크로 꼽히는 노무라종합연구소와 미국의 앤더슨컨설팅 등은 고객들에게 투자를 권유해 왔던 인터넷 벤처기업에 직접 출자하고 있다.

또 벤처기업에 경영진을 파견해 지휘봉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다.

이들 컨설팅회사는 정보기술(IT) 붐을 타고 기존 영업 범위를 넘어 벤처기업 전문 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나 후지쓰와 직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유통업체 세븐일레븐재팬이 최근 발표한 인사는 일본 IT업계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회사가 소니를 비롯한 7개 회사와 공동으로 설립한 전자상거래 회사 "세븐드림 닷컴"의 사장으로 오미시로 전 노무라종합연구소 창업발전센터 수석 연구원을 기용한 것이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세븐드림 닷컴에 13%를 출자한 대주주다.

노무라증권 계열사인 노무라종합연구소에는 일본 최고의 싱크탱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실체는 다르다.

이 회사는 1992년 인터넷 관련 사업부를 신설하고 기업용 정보시스템을 구축해온 일본 유수의 SI(시스템 통합) 업체다.

숨겨진 초대형 IT 기업인 것이다.

하시모토 쇼조 노무라 사장은 지난 1월 미국 최대 데이터 센터 전문기업인 엑소더스커뮤니케이션스과 제휴협정을 맺은 뒤 가진 회견에서 "사람도 자금도 인터넷 사업에 집중시키겠다"고 말했다.

컨설팅 회사가 시스템 구축과 주식거래를 통해 고객의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움직임은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컨설팅 그룹인 앤더슨컨설팅은 적극적으로 벤처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 회사는 앞으로 3년간 12억달러를 인터넷 벤처기업에 쏟아부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미 세계 17개 도시에 인터넷 벤처기업을 육성할 거점인 "닷 컴 런치센터"를 마련했다.

싱크탱크와 컨설팅회사는 지금까지 폭 넓은 고객으로부터 업무를 주문받기 때문에 특정기업의 경영에 필요 이상 관여하는 것을 피해왔다.

그런데 왜 노무라와 앤더슨은 특정기업과 일체화를 추진하려 하는가.

첫번째 목적은 유력한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경영전략과 맞아떨어지는 정보시스템을 일괄납품하는데 성공하면 시스템 운용비용과 갱신비 등 고정수입과 함께 경영컨설팅 수입도 챙길 수 있다.

또 주주로서 경영에 참가하면 주식공개시 거액의 자본차익이 생기는 것도 한 목적이다.

"싱크탱크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특정 기업의 주주가 되면 공정한 경영분석과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염려하는 컨설팅업체 경영자도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터넷 벤처기업의 기업공개 붐 속에서 컨설팅 회사들도 주식공개 차익이라는 달콤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목적은 자사의 우수한 인재를 묶어두는 데 있다.

컨설팅업체 브레인들은 최근 인터넷 벤처기업으로 속속 자리를 옮기고 있다.

관여하고 있는 기업이 성공을 거두면 높은 성과급을 얻을 수 있지만 벤처에 직접 뛰어들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하는 직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컨설팅업체들은 지금까지 제3자로서 수입을 얻었으며 컨설팅에서 나온 성과물이나 실패는 고객의 몫이었다.

이같은 영업형태는 위험은 적지만 우수한 젊은 인재를 붙들어 두기엔 적합하지 않다.

특히 최근 2~3년동안 싱크탱크와 컨설팅회사로부터의 인재유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성공시 자본차익을 컨설턴트에게도 배분하는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재유출에 의한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

컨설팅회사가 시스템 구축.운용을 일괄적으로 맡는 솔루션 회사와 벤처캐피털 기능을 함께 갖게 되면서 컨설팅업체들과 컴퓨터 시스템업체들간의 영업경계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스스로를 소형 컨설팅업체로 꼽는 NEC 금융시스템 부문은 다음 회계연도에 시스템 엔지니어(SE)를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후지쓰도 고객기업들의 경영노하우를 얻기 위해 시스템 SE를 금융과 유통업계 등에 파견해 실전경험을 쌓고 있다.

컨설팅회사가 고객기업의 전략입안이라는 윗물에서 시스템 구축이라는 아랫물 사업에 파고드는 데 맞서 컴퓨터 회사들은 경영컨설팅 능력을 키우고 있다.

노무라는 연내 주식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장으로 얻은 자금은 인터넷 사업 등에 활용할 방침이며 그렇게 되면 앞으로 "노무라 대 후지쓰 또는 NEC"라는 라이벌 구도는 더욱 부각될 것이다.

정보기술 물결은 이처럼 업종을 초월한 새로운 경쟁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용준 기자 dialect@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