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출품에 대한 외국의 수입규제가 해마다 심화되고 있다.

1996년 10건에 불과했던 피소 사례가 지금 99건에 이른다.

교역국가들의 시장개방 압력도 예의 염치 가리지 않는 노골적인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겉으로 국가 대 국가 문제인 듯한 무역갈등은 사실 기업들간의 문제다.

정부는 대리전을 치를 뿐 대부분 문제제기와 자료제공, 정책 아이디어가 모두 이해 당사자인 기업들에서 나온다.

우리 최대 교역국인 미국의 경우 이 선봉 역할을 하는 기업이 카길(Cargill,Inc.)이다.

카길의 5대 회장인 어니스트 마이섹 회장은 미국무역비상위원회의 회장이자 아태경제협력체 재계자문단(ABAC) 미국측 3인 위원중 한 명이다.

대통령직속 수출협의회와 환태평양 경제협의회 이사이기도 하다.

특히 ABAC 3인은 미국 수출전선의 주요 공략목표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데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종래 GM(자동차메이커) FMR(투자은행) 그리고 ARIS(인터넷컨설팅업체) 등의 대표들로 구성됐던 ABAC 3인을 지난 1월31일 카길(농업) 뉴욕라이프생명(보험업) ARIS 대표들로 재편해 향후 아시아 농산물시장 공략에 주력할 뜻을 내비쳤다.

카길은 세계 최대 농산물 유통회사며 미국 곡물수출 1위 기업이다.

미국 전체 소의 5분의 1을 도축하는 회사며 미국 2대 소금회사다.

비료 사료 종자 등 농민이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모든 원부자재를 공급하고 곡물 가축 면화 커피 등 거의 모든 종류의 농산물을 가공,유통시킨다.

1백35년 동안 한 우물만 팠고 창업주부터 4대 회장까지 평균 재직 기간이 32.5년이었다.

카길은 위스콘신주 태생인 윌 카길이 홈스테드법, 즉 개척농민에게 농지를 무상 불하하는 법의 혜택을 받고자 1865년 아이오와주에서 조그만 곡물창고회사를 차린 데서 시작됐다.

현재는 국내외에 절반씩 모두 8만여명의 직원으로 연간 매출 61조원, 순이익 8천억원을 올리고 있다.

세계 최대 비상장기업으로서 아직도 창업주의 후손이 전체 지분의 85%를 소유하고 있다.

현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입사해 카길에서만 49년을 봉직한 사람으로 1995년부터 사령탑을 맡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 세계 곳간 역할을 하며 1950년대 급성장한 카길은 70년대 소련에 대한 곡물수출과 아시아의 고속경제성장에 따른 식생활 변화 덕분에 또 한번 도약했다.

1981~86년 사이엔 아시아의 농업생산성 증가로 미국 전체 농산물 수출이 40%나 줄어들며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지만 무역자유화로 다시금 대아시아 수출이 늘며 1996년 최고의 호시절을 맞았다.

지금은 아시아 경제위기에다 4년째 풍작, 그리고 지난해 러시아에서의 투자실패로 다소 침체된 상태다.

하지만 카길의 앞날은 그 어떤 기업들보다 밝기만 하다.

우선 세계 인구가 매년 9천만명씩 늘고 있고 중국이 WTO에 곧 가입할 예정이다.

생활수준 향상으로 육류소비가 늘며 곡물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도국의 경작지 면적이며 단위면적당 생산성증가는 한계에 이르렀다.

여기다 물부족까지 겹쳐 세계 전체의 곡물 공급여력은 이래저래 줄어들 전망이다.

한편 그렇지 않아도 세계의 곡창지대로서 미국에 필적할 자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농업생산성은 정밀영농법과 유전자공학 덕분에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생산성 가격 물량 자본력 등 면에서 절대 열세인 개도국들의 경우 일단 한번 시장이 개방되면 농업기반이 크게 붕괴될 것이므로 카길의 미래는 더욱 더 밝다.

카길 경영진이 의회와 행정부 등을 상대로 세계 무역자유화를 주창하고 중국에 미국의 영구적 정상무역국(PNTR)자격을 부여하라고 로비하고 다니며 "기회가 노크하고 있다"고 흥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문위원 shindw@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