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영웅호걸들.

그들의 수신전략과 위기관리 능력은 어땠을까.

최근 완역된 "영웅의 역사"(진순신.오자키 호츠키 책임편집,솔출판사,전10권,각권 9천5백원)에는 난세를 헤쳐나간 중국 영웅 32명의 생애가 압축돼 있다.

일세를 풍미한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고고학적 자료와 고증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일본 최고의 고단샤출판사가 창립 90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중국의 군웅"의 한국어판.

학술적 가치가 높은데다 일러스트 사진 연표 지도가 풍부하게 담겨있어 흥미를 더한다.

"사기""삼국지"같은 기록을 토대로 하면서도 자유로운 발상의 열전 스타일을 택해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권두에세이에 실린 소논문에는 역법 한시 환관 제자백가 등 다양한 "조미료"를 녹여 중국사 이해에 참맛을 느끼게 한다.

진정한 패자의 길은 무엇인가.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에서 상징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섶나무 위에서 자며 응징을 맹세하던 오왕 부차.

그는 월나라를 정복하고 돌아오면서 월왕 구천과 요직의 관료들을 데려와 신하의 예를 취하게 한 뒤 석실에 가두고 말 사육을 시켰다.

월왕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응징의 칼을 갈았다.

와신상담의 고사가 여기에서 생겨났다.

진의 문공은 무려 19년간이나 망명과 유랑의 한을 삭이다 마침내 춘추시대의 패자로 올라섰다.

열세살에 진왕이 된 뒤 26년만에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의 득업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바람이 거셀 때는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렸다가 순풍을 등에 업고 대업을 완성하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항우와 유방의 패권쟁탈,조조와 손권,유비의 삼각쟁투,이들을 받쳐주는 명장들의 눈부신 활약도 장강의 물결아래 도도하게 흐른다.

7권 "대제국의 황제"와 8권 "망국의 황제"를 비교하는 재미 또한 특별하다.

수많은 군웅 틈에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위치를 굳히고 영광을 이어간 얘기들이 한무제 당태종 칭기즈칸 주원장 등의 몸을 빌려 재현된다.

경쟁력이 약화되고 시대흐름을 읽지 못한 황제들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전락했다.

재위 15년만에 부하에게 시해된 수 양제는 아버지를 죽이고 제위를 찬탈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풍류 천자로 불렸던 송 휘종은 번영의 정점에서 추락해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명 왕조 최후의 황제 숭정제는 강한 의지를 가졌지만 의심이 많아 국정을 그르치고 자멸했다.

대륙을 쥐고 흔든 여인들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숱한 살육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여후,카리스마적 전제군주로서 악녀.여괴 소리를 함께 들었던 여제 무칙천,권력에 농락당한채 정권 멸망의 장본인으로 지목됐던 양귀비 등 "여인천하"의 비화가 치마폭처럼 펼쳐진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