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든 "역시 나는 안돼"라며 쉽게 포기한다.
마치 안되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다.
머피의 법칙이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시암 썬셋" (Siam Sunset)의 주인공 페리처럼 자신도 모르게 그 경계선을 넘어 쉽게 운명론자로 변신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상존한다.
페리(라이너스 로치)는 행복한 남자다.
번듯한 직장에 아름다운 아내,정원이 딸린 개인주택도 갖고 있다.
어느날부터 페리는 "머피의 법칙"을 철석같이 믿는 불행한 남자로 돌변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하면서부터다.
집 정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아내는 비행기에서 떨어진 냉장고에 깔려 죽는다.
그게 어디 확률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 순간부터 페리는 "머피의 법칙" 노예가 돼린다.
하는 일마다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는 우연히 봉고게임에서 당첨돼 호주로 여행하는 티켓을 거머쥔다.
아내를 잊기 위한 호주여행은 행운이 아니라 연속되는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여행버스는 리무진은 커녕 폐차해도 아깝지 않은 고물버스에 운전기사는 불친철하기 이를데 없다.
텐트에서 자던 중 지진이 일어나고 여행중에 폭풍을 만나 일정이 뒤죽박죽이다.
애인과 악당의 돈을 훔쳐 달아나다 여행버스에 합류한 그레이스(다니엘 코맥)를 알면서부터 뒤쫓아 온 그 악당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과속 운전으로 버스는 불에 타 일행은 사막 한가운데에 고립된다.
머피의 법칙과의 힘겨운 싸움은 페리와 같은 처지지만 아름답고 용감한 그레이스와의 만남으로 대역전이 펼쳐진다.
25일 개봉하는 "시암썬셋"은 여행지에서 그레이스를 만나 불행을 극복하는 과정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코믹하게 그렸다.
영화는 결론적으로 두가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페리가 우여곡절끝에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법칙을 떨쳐내는 것이다.
"행과 불행은 종이한장 차이"라는 말처럼 행복은 인간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다른 하나는 제목과 관련이 있다.
페리는 특이한 색을 개발하는 "컬러리스트" (Colorist) 다.
그는 황무지와 다름없는 사막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을 마침내 발견한다.
바로 "시암썬셋"이다.
태국해변에서 아내의 머리결에 비친 주홍빛 노을색을 뜻하지만 사랑의 행운을 불러오는 색깔이기도 하다.
그가 그토록 찾던 시암 선셋을 사막에서 발견한 것은 "행복은 항상 우리주변에 가까이 있음"을 뜻한다.
인생은 결국 시암 썬셋의 색깔처럼 아름다운 게 아닌가.
늘 우리 곁에 있는데도 우리는 그걸 느끼지 못할 뿐이다.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과 "색감"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풀어낸 존 폴슨 감독의 연출솜씨가 뛰어나다.
중간중간에 보여주는 원색 컬러는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신선한 자극제다.
"시암 썬셋"은 지난해 "부천 판타스틱 국제영화제"에서 화제작 "큐브"와 "블레어 윗치"를 누르고 대상을 차지했다.
"칸느영화제"에서는 인기상을 받았다.
페리역의 라이너스 로치는 영국 로열세익스피어극단 출신이다.
여주인공 다니엘 코맥은 뉴질랜드 최고의 스타로 섹시하면서 현대적인 매력이 넘치는 여배우다.
이성구 기자 sklee@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