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은행정관개정과 '신관치' .. 안국신 <중앙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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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한 한빛.조흥.외환은행의 정관이 1년만에 바뀌었다.
임기 3년의 사외(비상임)이사들은 자율결의 형식을 빌려 최근 일괄 사표를 냈다.
이들 3개 은행은 대주주인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이 달 하순 정기주주총회에서 상당수의 사외이사를 바꿀 계획인 것으로 보도됐다.
은행 사외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 1년간 활동해 온 필자는 은행이 국민의 혈세로 지원받고도 대규모 적자를 낸 것에 대해 도덕적 책임과 자괴감을 가진다.
그러나 보도된 바와 같은 방식으로 사외이사들을 바꾼다는 것은 제도를 유린하는 편법이자 탈법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 은행의 정관은 미국 유수의 컨설팅회사들에 수십억원의 용역비를 주고 연구시켜 선진국의 모범 지배구조규범이라며 1년 전에 도입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정관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작년부터 감독당국은 또다시 은행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감독당국이 벌인 개선작업은 두루두루 좋은 일이다.
우선 일을 만들고 추진하는 것을 좋아하는 관료들의 체질에 맞는 일이다.
작년 초부터 터져 나온 은행경영진의 불평을 해소해 주는 대형노릇을 하는 것을 마다할 리가 없다.
수족처럼 부려지는 금융연구원과 선진국 모범규범을 연구하는 경영학자에게는 전공에 맞는 일거리가 생겨 신나는 일이다.
1년 전에 모범규범을 만든 미 컨설팅사로서는 더 신나는 일이다.
설문조사니,결과 브리핑이니,개선방안이니 들쑤시고 다니면서 한국금융의 실상을 더 익히고 뭉칫돈을 또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만든 정관인데 벌써 개정한다는거냐는 비난에 변명하듯 현 사외이사진은 말썽꾸러기이고 무능력한 집단인 것처럼 언론에 흘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정교한 "당신들의 축제" 속에 정관이 바뀐 것이다.
바뀐 정관의 핵심은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영진의 실적을 매년 평가하며 사외이사의 임기를 1년으로 줄인 것이다.
이것들은 장단점이 있는대로 종전보다 개선된 측면이 크다.
문제는 경과규정이다.
1년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으니까 현 경영진은 전원 유임시키고 올해부터 실적평가를 제대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말썽 많은" 사외이사만큼은 지난 1년으로도 족하니까 물갈이한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고 이번 개정에서도 전혀 손대지 않은 은행의 지배구조에 의하면 (사외)이사를 뽑을 때는 이사회 운영위원회에서 후보를 올려 이사회에서 확정하고 이를 주주총회에 부의하게 돼있다.
모범규준이라고 정해 놓은 이 제도장치를 아예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법과 규정을 지키도록 감독해야 할 정부가 편법과 탈법을 묵인하는 것이다.
자율결의 형식을 빌려 사외이사들로부터 사표를 받은 것 자체가 새로운 은행지배구조의 본 뜻을 훼손하는 신관치금융이다.
경영진의 경영활동을 감독하고 필요하면 경영진을 해임할 권능까지 가진 이사회다.
이사회의 주축은 물론 사외이사다.
사외이사의 일괄사표는 경영진의 목을 딸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외이사들이 스스로의 목을 따서 경영진에게 바치는 꼴이다.
모범지배구조랍시고 심어 놓고 운용면에서 본말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현 사외이사들이 막중한 직무를 유기하고 사표를 냈다는 점에서는 무능력한 집단이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고 버티는 이사들을 뭘 몰라도 한참 모르거나 구차하게 자리에 연연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풍토이다.
민간은행인 한미은행의 사외이사들로부터도 사표를 받아내는 판이다.
은행경영진은 새 지배구조가 출범한 작년 초 사외이사들에 합동사무실을 내주는 것마저 인색했다.
외인부대로 가급적 멀리 하려는 척박한 풍토에서 사외이사와 경영진간에 마찰음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사회 운영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는 것은 사외이사제도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 1년간 사외이사들은 경영진과 감독당국이 안팎에서 자기들을 바지저고리로 만드는데 대해 목소리를 키워왔다.
사외이사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올 한해 객관적 평가 절차를 밟아 내년에 제도의 틀 안에서 재신임 여부를 정해야 한다.
정부의 위엄을 빌려 경영진이 입맛대로 사외이사를 솎아낸다는 것은 난센스이다.
진정 "일신상의" 사정으로 그만 두려는 이사가 있으면 후속 이사 선임을 제도가 정한대로 현행 이사회가 주도해야 한다.
이사회가 주도해도 대주주인 정부와 협의하고 경영진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다.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선진제도를 짓밟는 쿠데타적 탈법은 사라져야 한다.
< ksahn@ ca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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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국경제신문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임기 3년의 사외(비상임)이사들은 자율결의 형식을 빌려 최근 일괄 사표를 냈다.
이들 3개 은행은 대주주인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이 달 하순 정기주주총회에서 상당수의 사외이사를 바꿀 계획인 것으로 보도됐다.
은행 사외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 1년간 활동해 온 필자는 은행이 국민의 혈세로 지원받고도 대규모 적자를 낸 것에 대해 도덕적 책임과 자괴감을 가진다.
그러나 보도된 바와 같은 방식으로 사외이사들을 바꾼다는 것은 제도를 유린하는 편법이자 탈법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 은행의 정관은 미국 유수의 컨설팅회사들에 수십억원의 용역비를 주고 연구시켜 선진국의 모범 지배구조규범이라며 1년 전에 도입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정관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작년부터 감독당국은 또다시 은행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감독당국이 벌인 개선작업은 두루두루 좋은 일이다.
우선 일을 만들고 추진하는 것을 좋아하는 관료들의 체질에 맞는 일이다.
작년 초부터 터져 나온 은행경영진의 불평을 해소해 주는 대형노릇을 하는 것을 마다할 리가 없다.
수족처럼 부려지는 금융연구원과 선진국 모범규범을 연구하는 경영학자에게는 전공에 맞는 일거리가 생겨 신나는 일이다.
1년 전에 모범규범을 만든 미 컨설팅사로서는 더 신나는 일이다.
설문조사니,결과 브리핑이니,개선방안이니 들쑤시고 다니면서 한국금융의 실상을 더 익히고 뭉칫돈을 또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만든 정관인데 벌써 개정한다는거냐는 비난에 변명하듯 현 사외이사진은 말썽꾸러기이고 무능력한 집단인 것처럼 언론에 흘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정교한 "당신들의 축제" 속에 정관이 바뀐 것이다.
바뀐 정관의 핵심은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영진의 실적을 매년 평가하며 사외이사의 임기를 1년으로 줄인 것이다.
이것들은 장단점이 있는대로 종전보다 개선된 측면이 크다.
문제는 경과규정이다.
1년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으니까 현 경영진은 전원 유임시키고 올해부터 실적평가를 제대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말썽 많은" 사외이사만큼은 지난 1년으로도 족하니까 물갈이한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고 이번 개정에서도 전혀 손대지 않은 은행의 지배구조에 의하면 (사외)이사를 뽑을 때는 이사회 운영위원회에서 후보를 올려 이사회에서 확정하고 이를 주주총회에 부의하게 돼있다.
모범규준이라고 정해 놓은 이 제도장치를 아예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법과 규정을 지키도록 감독해야 할 정부가 편법과 탈법을 묵인하는 것이다.
자율결의 형식을 빌려 사외이사들로부터 사표를 받은 것 자체가 새로운 은행지배구조의 본 뜻을 훼손하는 신관치금융이다.
경영진의 경영활동을 감독하고 필요하면 경영진을 해임할 권능까지 가진 이사회다.
이사회의 주축은 물론 사외이사다.
사외이사의 일괄사표는 경영진의 목을 딸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외이사들이 스스로의 목을 따서 경영진에게 바치는 꼴이다.
모범지배구조랍시고 심어 놓고 운용면에서 본말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현 사외이사들이 막중한 직무를 유기하고 사표를 냈다는 점에서는 무능력한 집단이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고 버티는 이사들을 뭘 몰라도 한참 모르거나 구차하게 자리에 연연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풍토이다.
민간은행인 한미은행의 사외이사들로부터도 사표를 받아내는 판이다.
은행경영진은 새 지배구조가 출범한 작년 초 사외이사들에 합동사무실을 내주는 것마저 인색했다.
외인부대로 가급적 멀리 하려는 척박한 풍토에서 사외이사와 경영진간에 마찰음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사회 운영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는 것은 사외이사제도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 1년간 사외이사들은 경영진과 감독당국이 안팎에서 자기들을 바지저고리로 만드는데 대해 목소리를 키워왔다.
사외이사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올 한해 객관적 평가 절차를 밟아 내년에 제도의 틀 안에서 재신임 여부를 정해야 한다.
정부의 위엄을 빌려 경영진이 입맛대로 사외이사를 솎아낸다는 것은 난센스이다.
진정 "일신상의" 사정으로 그만 두려는 이사가 있으면 후속 이사 선임을 제도가 정한대로 현행 이사회가 주도해야 한다.
이사회가 주도해도 대주주인 정부와 협의하고 경영진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다.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선진제도를 짓밟는 쿠데타적 탈법은 사라져야 한다.
< ksahn@ ca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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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국경제신문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