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인도 시인이 된다면 .. 박라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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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설명할 때 나는 "세상과 친해지려 했으나 자신의 미숙함으로 인해 번번이 상처받은 순간들의 기록,즉 상처의 아름다운 기록이 시"라고 말한다.
선과 악의 아름다운 공존,그 존재의 끝에서 얻어지는 것이 시이며 끝없는 사투의 길이 시인의 길이라고 말한다.
아침신문을 대할 때마다,밤 9시 뉴스를 볼 때마다,선거철이 될 때마다,첨예한 정치적 논쟁이 있을 때마다,시와 정치의 상관 관계를 떠올린 적이 많다.
극명하게 다른 감성의 소유자들일 것 같으면서도 유사성이 있을 것 같다는 미련이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좋은 시를 얻어내기 위한 기다림은 거의 초인적 인내를 수반해야한다고,시인의 감성은 풍선처럼 가벼워 후욱 날아오르기도 해야하지만 또 그 가벼운 감성을 팽팽하게 받쳐줄 가라앉음의 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마약과 같은 존재가 또 시라는 것을 인정할수 있는 자가 진정한 시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스승,선배 동료 후배를 만난 적은 거의 없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끝없이 기도하는 일이 시인의 삶이기에.이러한 상처의 기록이 감동의 물결을 이룰수 있기를,그 상처의 기록이 거의 종교적 경지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여러 몸짓이 시인의 몸짓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록이 권력이 되고 돈이 될수도 있는가.
거의 그렇지 않다.
다른 인접분야의 예술행위에 비해 너무나 미미한 현실적 응답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강의실에서 열정적일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시적 재산이 무궁무진한 무형의 자산이 될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세월이 있으므로,일생을 살아내는데 있어 잘못 읽혀진 내면,혹은 잘못 그려진 그림이 수없이 많을 수 있다고 본다.
그때 그러한 상황을 정당하게 바꿀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시라고 주장할수 있게 됐다.
정치가를 좋아한 적은 없으나 혁명가에게는 전율을 느낀 적이 많다.
혁명가의 가슴에는 강물이 흐를 것 같아서다.
그 출렁임에 실려 공중에 깃발을 세우려 하는 자일 것 같아서다.
혁명가는 가슴의 소리를 따라가는 전사라고 생각하고 싶다.
조건없이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 대부분 예술가의 인생이듯 권좌에 앉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슴의 소리를 따라 걸어가는 정치인,정치예술가가 더없이 그립다.
그래서인데 정답은 잘 안보이지만 가슴을 울리는 정치사가 이나라 아침신문에 쓰여질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수의 예리한 눈빛이 되고 다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되려는 눈빛과 목소리만을 권좌에 앉힐수 있는 힘,그 힘만은 오직 우리 유권자의 고유권한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한번 권좌에 앉으면 죽을때까지 내려오지 않으려하는 자,억지와 거짓말을 일삼는 자의 입술과 엉덩이는 저절로 짓물러져버렸으면 좋겠다.
21세기에는 과학과 문화는 첨단을 걷되 정치만은 철저히 권선징악적으로 전개됐으면 한다.
저 사람은 사라지겠거니 하고 잠자면 다음날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너무 많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힘없는 자들은 약육강식의 세상을 조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이상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상황을 바꿀수 있도록 내버려 둬선 안된다.
아첨하는 자에게 권력을 얹어주는 일은 철저히 봉쇄돼야 한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그래,이것이야"하며 삶의 기쁨을 느낄수 있는 정치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꿈속에서 시가 잉태되듯이 우리의 뜻을 모아 세운 한 사람의 뒤를 보고 따라 걷다 보면 만나고 싶던 그 사람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때 우리는 저 사람이 우리의 사람이라고 하면서,저 등은 우리의 눈빛,우리의 목소리를 안고가는 등이라고 하면서,감동의 물결은 밥이 되고 잠이 되고 숨을 쉬게 하기때문에 기꺼이 미쳐서 따라가는 긴 행렬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입이 수천 수만의 입이 되고,한 사람의 눈이 수천 수만의 눈이 되고,한 사람의 발길이 수천 수만의 발길이 되기를 바란다.
감히 그 주인공이 되겠노라고 외칠수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한다.
시인들은 한 사람의 생각이 수천 수만의 생각을 울리고 웃길수 있는 무기,즉 시가 그 무기이기를 바라면서 수많은 밤과 낮을 바친다.
정치인도 그와 같은 낭만에 빠져서,그런 항아리에 빠져서,일생을 살다가면 안될까.
시와 정치,시인과 정치인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감성의 관계여야 하며 그 존립의 당위성도 그 인접관계의 유사성에 의해 설명될수 있을 때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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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시인
<>원광대 국문과 박사
<>광주대 문예창작과 강사
<>시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생밤 까주는 사람""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선과 악의 아름다운 공존,그 존재의 끝에서 얻어지는 것이 시이며 끝없는 사투의 길이 시인의 길이라고 말한다.
아침신문을 대할 때마다,밤 9시 뉴스를 볼 때마다,선거철이 될 때마다,첨예한 정치적 논쟁이 있을 때마다,시와 정치의 상관 관계를 떠올린 적이 많다.
극명하게 다른 감성의 소유자들일 것 같으면서도 유사성이 있을 것 같다는 미련이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좋은 시를 얻어내기 위한 기다림은 거의 초인적 인내를 수반해야한다고,시인의 감성은 풍선처럼 가벼워 후욱 날아오르기도 해야하지만 또 그 가벼운 감성을 팽팽하게 받쳐줄 가라앉음의 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마약과 같은 존재가 또 시라는 것을 인정할수 있는 자가 진정한 시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스승,선배 동료 후배를 만난 적은 거의 없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끝없이 기도하는 일이 시인의 삶이기에.이러한 상처의 기록이 감동의 물결을 이룰수 있기를,그 상처의 기록이 거의 종교적 경지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여러 몸짓이 시인의 몸짓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록이 권력이 되고 돈이 될수도 있는가.
거의 그렇지 않다.
다른 인접분야의 예술행위에 비해 너무나 미미한 현실적 응답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강의실에서 열정적일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시적 재산이 무궁무진한 무형의 자산이 될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세월이 있으므로,일생을 살아내는데 있어 잘못 읽혀진 내면,혹은 잘못 그려진 그림이 수없이 많을 수 있다고 본다.
그때 그러한 상황을 정당하게 바꿀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시라고 주장할수 있게 됐다.
정치가를 좋아한 적은 없으나 혁명가에게는 전율을 느낀 적이 많다.
혁명가의 가슴에는 강물이 흐를 것 같아서다.
그 출렁임에 실려 공중에 깃발을 세우려 하는 자일 것 같아서다.
혁명가는 가슴의 소리를 따라가는 전사라고 생각하고 싶다.
조건없이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 대부분 예술가의 인생이듯 권좌에 앉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슴의 소리를 따라 걸어가는 정치인,정치예술가가 더없이 그립다.
그래서인데 정답은 잘 안보이지만 가슴을 울리는 정치사가 이나라 아침신문에 쓰여질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수의 예리한 눈빛이 되고 다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되려는 눈빛과 목소리만을 권좌에 앉힐수 있는 힘,그 힘만은 오직 우리 유권자의 고유권한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한번 권좌에 앉으면 죽을때까지 내려오지 않으려하는 자,억지와 거짓말을 일삼는 자의 입술과 엉덩이는 저절로 짓물러져버렸으면 좋겠다.
21세기에는 과학과 문화는 첨단을 걷되 정치만은 철저히 권선징악적으로 전개됐으면 한다.
저 사람은 사라지겠거니 하고 잠자면 다음날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너무 많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힘없는 자들은 약육강식의 세상을 조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이상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상황을 바꿀수 있도록 내버려 둬선 안된다.
아첨하는 자에게 권력을 얹어주는 일은 철저히 봉쇄돼야 한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그래,이것이야"하며 삶의 기쁨을 느낄수 있는 정치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꿈속에서 시가 잉태되듯이 우리의 뜻을 모아 세운 한 사람의 뒤를 보고 따라 걷다 보면 만나고 싶던 그 사람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때 우리는 저 사람이 우리의 사람이라고 하면서,저 등은 우리의 눈빛,우리의 목소리를 안고가는 등이라고 하면서,감동의 물결은 밥이 되고 잠이 되고 숨을 쉬게 하기때문에 기꺼이 미쳐서 따라가는 긴 행렬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입이 수천 수만의 입이 되고,한 사람의 눈이 수천 수만의 눈이 되고,한 사람의 발길이 수천 수만의 발길이 되기를 바란다.
감히 그 주인공이 되겠노라고 외칠수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한다.
시인들은 한 사람의 생각이 수천 수만의 생각을 울리고 웃길수 있는 무기,즉 시가 그 무기이기를 바라면서 수많은 밤과 낮을 바친다.
정치인도 그와 같은 낭만에 빠져서,그런 항아리에 빠져서,일생을 살다가면 안될까.
시와 정치,시인과 정치인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감성의 관계여야 하며 그 존립의 당위성도 그 인접관계의 유사성에 의해 설명될수 있을 때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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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시인
<>원광대 국문과 박사
<>광주대 문예창작과 강사
<>시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생밤 까주는 사람""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