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적 예외"라는 말이 있다.

강대국들이 융성과 몰락을 거듭해온 긴 역사 속에서 프랑스는 항상 페이스를 잃지 않고 나름대로의 자존심을 지켜왔다는 긍지를 표현한 것이다.

21세기 프랑스는 몇가지 분야에서 확실한 프랑스적 예외를 실천하려 한다.

정보기술(IT) 엔지니어링 생명과학...

목록에 올라있는 아이템들이다.

이 가운데 특히 "바이오"에 대한 관심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프랑스 과학기술부는 최근 생명과학을 21세기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게놈 제약 뇌과학 등 바이오와 관련된 연구.개발(R&D)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밀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파리 시내 사무실에서 만난 프랑스 교육과학부의 크리스티앙 오필라 국장이 설명한다.

물론 요즘은 세계 어디를 가도 바이오를 거론하지 않는 곳이 없다.

게다가 프랑스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이같은 바이오 열풍에 조금 늦게 합세한 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자신이 있다.

우선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농업이 발달한 프랑스는 언제나 "생명"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고 생물의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해왔다.

노벨상 수상자를 10명 가까이 배출한 파스퇴르연구소가 그 사실을 입증해 주는 대표적인 예.

프랑스 정부가 전략의 귀재라는 점도 든든함을 더해주는 요소다.

프랑스 정부는 일단 한다면 밀어부치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다.

중앙정부의 추진력에 지방정부가 탄탄한 뒷받침을 해준다.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강국이 되기로 작정한 프랑스 정부는 31년전부터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니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필두로 전국에 42개의 과학단지를 설립하고 "테크노폴"(과학의 중심지)이라 이름붙였다.

그동안의 발전과정을 보면 프랑스처럼 중앙집권과 지방분화가 잘 어우러진 나라도 드물다는 느낌이 든다.

테크노폴은 설립은 중앙정부가 주도하지만 일단 지어지면 그 다음은 거의 지역정부의 몫이다.

"우리것은 우리가 알아서 키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테크노폴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 집중연구분야를 달리한다.

동부는 제약,서부는 IT과 식품공학이 강하다.

또 중부로 가면 생명과학이,남부에는 의학과 IT가 세를 떨치고 있다.

3년여전 프랑스 정부는 테크노폴을 한층 더 전문화시키기 위한 구상에 착수했다.

21세기 전략산업으로 정한 바이오를 집중양성키 위해서다.

생명과학단지 "제노폴"(genopole)의 탄생은 이렇게 이뤄졌다.

파리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신도시 에브리.

바로 지난 98년 정부의 인간게놈프로젝트 발표와 함께 공식 출범한 제노폴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아직도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이 곳은 도시 전체가 "게놈타운"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따로 단지라고 구분지을 필요도 없이 생명과학 전문대학인 "에브리-에손느" 캠퍼스를 중심으로 시내 곳곳에 연구소와 업체가 들어서 있다.

현재 이 곳에 들어선 연구소와 업체들은 40여개.

인간 게놈만을 다루는 과학단지로서는 유럽 최대 규모다.

대표적 연구소로는 국립연구소 제노스코프를 비롯해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산하 연구소,뇌신경 유전자 전문연구소인 인세름 등이 있다.

프랑스 최대 제약업체 론풀랑,설립 5년만에 DNA합성 분야에서 유럽 선두주자로 부상한 젠세트 등 유명 기업체들의 연구소도 눈에 띈다.

1년전부터는 입주를 희망하는 벤처기업들의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는 제노폴의 신생기업 인큐베이터 시스템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에브리-에손 대학의 교수진과 학생들도 기술인력이 부족한 신생기업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혜택이다.

지난해 이 곳을 방문한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새천년을 주도할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에브리를 연구소와 대학,산업체가 3자공조체제를 이루는 종합 바이오테크단지로 육성하겠다"고 다짐했다.

프랑스 전역을 통틀어 에브리만큼 산학협동이 잘 되는 과학단지도 없다.

제노폴의 정책방향에 따라 신설학과를 만드는 에브리-에손 대학은 제노폴 입주업체들을 위한 전문인력양성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덕분에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문적 특성이 없는 지방국립대였던 이 대학은 이제 유럽에서 손꼽히는 생명공학 전문대학으로 성장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피에르 탕부랭 제노폴 소장은 앞으로 에브리와 같은 성공적인 제노폴이 더욱 많이 생겨 프랑스의 바이오산업을 짊어지고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한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정부의 전략적 정책과 국민의 관심으로 짧은 시간내 무섭게 성장한 프랑스의 바이오 산업.

탕부랭 소장의 말처럼 이제는 "포스트게놈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파리.에브리=강혜구 특파원 hyeku@coom.com, 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