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천수이볜 총통당선] 양안에 긴장감고조..'향후 대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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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이볜엔 민진당 후보의 대만 총통 당선은 양안(중국-대만)관계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49년 대륙 공산당정권 설립과 국민당의 대만섬 이주 후 계속됐던 국공내전식 대결구도에 질적 변화가 예상된다.
양측 모두 군사적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뜻을 표명하고 있다.
천 후보가 당선될 경우 양안간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쳐왔었던 중국은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중국은 당선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앞으로 그가 어떤 정책을 쓸지를 지켜보겠다"며 대만에 대화를 촉구했다.
천 당선자 역시 "필요하다면 중국을 방문하겠다"며 영구 평화협정 및 군사신뢰 구축 등을 제안했다.
그렇다고 양안관계가 이전보다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 공산당의 "1개 국가 원칙"과 대만 민진당의 "2개 국가" 원칙은 결코 타협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과 천 당선자는 선거 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이 천 후보 당선과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대만독립 선거다.
최근 발표한 중국의 "양안관계 백서"는 "대만이 독립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경우 즉각 무력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천 후보는 이를 의식해 선거기간중 "독립선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천 후보가 집권 후 독립선거를 치를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양안간 위기는 오히려 미국의 개입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이 경제적 실리와 아태지역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공공연하게 대만지원에 나선다면 중국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 왔다.
중국도 의회내 반중국 인사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에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올해 있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대만정책에 변화가 온다면 양안 파고는 높아질 수 있다.
중국-대만간 경제교류는 양안간 위기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확대될 수도 있다.
양안관계가 정치대립 구도에서 실리적인 차원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양측간 교역액은 2백35억달러로 전년대비 14.5%가 증가했다.
1천여개 대만기업이 작년 말 현재 약 2백억달러(실제투자기준)를 투자했다.
중국과 대만 모두 정치대립이 이 같은 경제협력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베이징의 한 서방전문가는 "앞으로 상당기간 중국과 대만은 각각 기본입장을 바탕으로 보다 실리적 차원의 관계구도를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중국은 대만에 대해 홍콩과 마카오 보다 더 느슨한 형태의 "일국양제(한나라 두체제)"를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ked.co.kr
< 양안관계 일지 >
*1949년 12월=장제스총통의 국민당(KMT)이 국공(국공)
내전에서 패해 대만에 망명정부 수립.
*1958년=대만의 진먼섬을 놓고 47일간 포격전.
*1971년=유엔의 중국 대표권 인정으로 대만 유엔탈퇴.
*1987년=대만 계엄령 해제.가족상봉위한 본토방문과 제3자 통한
본토와의 무역,투자 허용.
*1991년=대만,중국과의 전쟁상태를 공식적으로 종식
*1992년=대만 해협교류기금회(SEF)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
(ARATS)가 양안간 민간문제 검토.
*1995년1월=장쩌민중국 국가주석,대만과의 평화통일 "8개안"제시.
*1995년6월=리덩후이대만 총통의 미국 코넬대 방문을 계기로
중국이 대만과의 접촉을 단절시킴.
*1996년3월=중국,리덩후이 총통의 재선을 막기위해 3차례 미사일
발사,두차례 모의 전쟁연습 실시.
*1998년10월=SEF의 구전푸 회장의 중국 방문으로 양안관계 호전. *1999년7월=리덩후이 총통의 양국론 발언.
*1999년10월=장쩌민 주석,21세기 초반 대만 귀속 선언
*2000년2월21일=중국,전쟁불사 방침 제시.
*2000년3월15일=주룽지중국총리,대만 유권자들에게 독립을
선택하지 말 것을 직접 경고
지난 1949년 대륙 공산당정권 설립과 국민당의 대만섬 이주 후 계속됐던 국공내전식 대결구도에 질적 변화가 예상된다.
양측 모두 군사적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뜻을 표명하고 있다.
천 후보가 당선될 경우 양안간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쳐왔었던 중국은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중국은 당선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앞으로 그가 어떤 정책을 쓸지를 지켜보겠다"며 대만에 대화를 촉구했다.
천 당선자 역시 "필요하다면 중국을 방문하겠다"며 영구 평화협정 및 군사신뢰 구축 등을 제안했다.
그렇다고 양안관계가 이전보다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 공산당의 "1개 국가 원칙"과 대만 민진당의 "2개 국가" 원칙은 결코 타협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과 천 당선자는 선거 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이 천 후보 당선과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대만독립 선거다.
최근 발표한 중국의 "양안관계 백서"는 "대만이 독립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경우 즉각 무력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천 후보는 이를 의식해 선거기간중 "독립선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천 후보가 집권 후 독립선거를 치를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양안간 위기는 오히려 미국의 개입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이 경제적 실리와 아태지역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공공연하게 대만지원에 나선다면 중국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 왔다.
중국도 의회내 반중국 인사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에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올해 있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대만정책에 변화가 온다면 양안 파고는 높아질 수 있다.
중국-대만간 경제교류는 양안간 위기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확대될 수도 있다.
양안관계가 정치대립 구도에서 실리적인 차원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양측간 교역액은 2백35억달러로 전년대비 14.5%가 증가했다.
1천여개 대만기업이 작년 말 현재 약 2백억달러(실제투자기준)를 투자했다.
중국과 대만 모두 정치대립이 이 같은 경제협력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베이징의 한 서방전문가는 "앞으로 상당기간 중국과 대만은 각각 기본입장을 바탕으로 보다 실리적 차원의 관계구도를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중국은 대만에 대해 홍콩과 마카오 보다 더 느슨한 형태의 "일국양제(한나라 두체제)"를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ked.co.kr
< 양안관계 일지 >
*1949년 12월=장제스총통의 국민당(KMT)이 국공(국공)
내전에서 패해 대만에 망명정부 수립.
*1958년=대만의 진먼섬을 놓고 47일간 포격전.
*1971년=유엔의 중국 대표권 인정으로 대만 유엔탈퇴.
*1987년=대만 계엄령 해제.가족상봉위한 본토방문과 제3자 통한
본토와의 무역,투자 허용.
*1991년=대만,중국과의 전쟁상태를 공식적으로 종식
*1992년=대만 해협교류기금회(SEF)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
(ARATS)가 양안간 민간문제 검토.
*1995년1월=장쩌민중국 국가주석,대만과의 평화통일 "8개안"제시.
*1995년6월=리덩후이대만 총통의 미국 코넬대 방문을 계기로
중국이 대만과의 접촉을 단절시킴.
*1996년3월=중국,리덩후이 총통의 재선을 막기위해 3차례 미사일
발사,두차례 모의 전쟁연습 실시.
*1998년10월=SEF의 구전푸 회장의 중국 방문으로 양안관계 호전. *1999년7월=리덩후이 총통의 양국론 발언.
*1999년10월=장쩌민 주석,21세기 초반 대만 귀속 선언
*2000년2월21일=중국,전쟁불사 방침 제시.
*2000년3월15일=주룽지중국총리,대만 유권자들에게 독립을
선택하지 말 것을 직접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