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던 19일.

어렵사리 통화가 연결된 베이징주재 대만 상사원은 이번 총통선거를
묻는 질문에 "피곤으로 찌든 대만 주민들의 성스러운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민당 독재 및 고위층에서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에 대한
''항거''라고 표현했다.

대만인들의 자존심이 살아났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대만인들은 지난 수십년간 ''잘 살아보자''는 기치를 내걸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덕택에 대만은 찬란한 경제발전을 이뤘고, 아시아의 경제 우등생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인들은 지금 피곤하다.

무엇인가가 그들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는 침탈과 굴욕, 항거의 연속이었다.

대만은 지난 1860년대 초 네덜란드 스페인 등의 침입으로 열강의 손아귀에 놓이게 된다.

1661년 명나라 정성공이 외세를 몰아내면서 푸젠 광둥 등에서 주민을 이주시켰다.

대만 인구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는 본성인들은 이들의 후예다.

대만인들은 약 50여년간 일제치하에 시달려야 했고 항일투쟁 역사도
갖고 있다.

청.일전쟁 청.프랑스전쟁이 대만에서 시작됐다.

외세가 물러가나 했더니 대륙에서 공산당에 쫓긴 국민당이 지난 49년 ''허가도 없이'' 들어왔다.

그들은 대만 안방을 차지하고 본성인을 지배했다.

지난 47년에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세력들이 양민 2만여명을
무차별 학살하는 2.28사건이 발생했다.

국민당에 대한 대만 본성인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

대만인들은 ''대륙 수복''이라는 국민당의 정치 슬로건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는다.

그들은 경제발전을 외성인들의 공로로 인정하는 것도 거부한다.

허리띠를 졸라맨 것은 절대다수 대만 본성인이지 외성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만인들은 오히려 외성인들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대만 상사원에게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대만에 독립 분위기가 형서돼 양안관계가 악화, 사업에 차질을 빚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치적 독립 선언은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선거 결과는 이미 대만 주민들이 중국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얘기다.

그의 대답을 듣고 대만인들은 ''대만인에 의한, 대만인을 위한, 대만인의 정치''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