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야후를 비롯한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이 해커들의 공격을 받아 마비됐던 일은 온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인터넷이 이미 현대 사회의 기본적 도구로 자리잡았는데,그것이 해커들의 공격에 취약함이 드러났으니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미국 재닛 리노 법무장관이 그 일을 저지른 해커들을 꼭 붙잡겠노라고 다짐한 것에서 보듯,각국 정부들의 반응도 빠르고 거셌다.

당시의 충격과 흥분이 가셨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 일을 차분한 마음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살필 수 있을 터이다.

해커들이 제기하는 위협은 물론 심각하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를 그들로부터 지키려는 결의와 투자는 당연하고 시급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조망해보면 해커들의 존재와 활동은 오히려 인터넷의 건강과 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하나의 생태계엔 많은 종들이 산다.

그런 종들 가운데 상당수는 다른 종들을 잡아먹는 포식자 (predator) 들이고 그 포식자들을 다시 잡아먹는 상위포식자 (hyper-predator) 들이 있어서 생태계엔 복잡한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언뜻 보기와는 달리 포식자들의 존재는 생태계의 건강과 다양성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이다.

포식자들은 비효율적인 종들이나 개체들을 없애므로 생태계는 자연스럽게 보다 건강하고 효율적인 체계로 진화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포식자들이 생태계의 다양성에 이바지하는 과정이다.

1960년대에 미국 생물학자 로버트 페인은 미국 서부 해안에서 두드러진 포식자인 불가사리를 제거했다.

그러자 불가사리가 즐겨 먹는 연체동물이 너무 번성해서 바닷가 바위에 붙어사는 종들의 수가 15개에서 8개로 줄어들었다.

그 실험의 결과로 한 종이 지나치게 번식하는 것을 막는 종석 포식자 (keystone predator) 라는 개념이 나왔다.

종석 포식자들 가운데 잘 알려진 것은 초식 동물들이 지나치게 번식하는 것을 막는 늑대와 성게의 지나친 번식을 막는 해달이다.

따지고 보면 사이버스페이스도 하나의 생태계다.

수많은 기계들과 프로그램들과 사람들과 기업들로 이루어져 묘하게 조화를 이룬 생태계다.

그런 생태계에서 해커들과 그들이 공격에 쓰는 프로그램들은 포식자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현실의 생태계에서 포식자들의 존재가 생태계를 건강하고 다양하게 만들 듯 해커들의 끊임없는 공격은 취약한 사이트들을 없애서 사이버스페이스를 보다 건강하고 다양한 생태계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몇 해 전 미국 생태학자 토머스 레이는 "티에라"라는 전자 생태계를 고안했다.

그 안에서 전산 프로그램들이 스스로 증식하고 진화하도록 된 장치였다.

그 전자 생태계가 가동되자 곧 포식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런 포식자들의 영향은 생물적 생태계에서처럼 좋았다.

포식자가 없는 상태에선 8개의 종들만이 살아 남았지만 포식자가 있는 상태에선 16개의 종들이 살아 남았다.

이 실험은 사이버스페이스의 진화에서 해커들이 장기적으론 대체로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지금 인터넷은 집요한 해커들의 공격에 대한 적절한 방어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인터넷의 그런 취약성은 대체로 세가지 요인들에서 나온다.

먼저 서로 믿을수 있는 사람들이 자료 공유를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인터넷은 근본적으로 개방적이다.

소프트웨어엔 버그들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버그들은 해커들이 소프트웨어를 휘어잡는 손잡이 노릇을 한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을 관리 보호하는데 쓰이는 자원이 너무 적다.

이제 이런 인터넷의 약점들이 드러났으므로,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인터넷은 보다 튼튼한 체계로 바뀔 것이다.

인터넷이 보다 튼튼한 체계로 진화하는 것에 맞춰,물론 해커들도 새롭고 더 강력한 공격력을 갖춘 존재들로 진화할 것이다.

그런 평행 진화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런 진화는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초식동물들과 그들을 잡아먹는 포식자들의 진화과정과 아주 비슷할 것이다.

포식자들을 피하기 위해 초식동물들은 점점 빠르게 되고 그렇게 빨라진 먹이들을 사냥하기 위해 포식자들은 그들대로 점점 빠르게 되고,그래서 마침내 우아하고 빠른 영양들과 거세고 빠른 사자가 나타났다.

그런 현상이 사이버스페이스에도 나타날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를 공격하는 해커들의 동기들이 무엇이든 해커들은 자신들이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생태계가 건강하고 진화하도록 돕는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기능을 이미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번 공격으로 인터넷이 입은 손실은 미미하지만 인터넷의 취약점들이 잘 밝혀지고 적극적 대책들이 나왔다는 점에서 인터넷이 얻은 이득은 아주 크다.

얼마나 유쾌한 역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