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분 주제 발표에 10분간 질의 응답"

한국의 정부기관이나 금융기관들이 미국에 와서 국내경제 환경을 알리는 투자설명회를 할 때 흔히 적용하는 "공식"이다.

인사말이나 주제 발표문은 사전에 배포하는 설명회 자료에 다 들어가 있는데도 기를 쓰고 다 읽어내려간다.

그 바람에 정작 참석자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거나, 궁금한 점을 물을 수 있는 "Q&A 세션(질의응답 시간)"은 주제발표의 액세서리로 끝나버리기 일쑤다.

미국 사람들이 하는 세미나나 설명회는 그 반대다.

총론에 관한 주제 발표는 되도록 짧고 간결하게 끝내고,나머지 시간은 각론을 다루는 Q&A로 진행하는 게 당연시 돼있다.

활발한 질의응답을 통해 궁금한 것을 해소해내는 것이 설명회나 세미나의 진정한 취지이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간 배분이다.

월가의 프로 투자자들 상당수가 "도대체 한국사람들이 하는 설명회는 들을 게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미리 준비한 원고를 줄줄 읽어내려가는 데 대부분 시간을 때우고,골치아픈 Q&A는 최소화하자는 자기 편의주의의 소산이 아니냐"는 따가운 질책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성 싶다.

이같은 "세미나 한국병"이 도진 것일까.

지난 16일(현지시간) 뉴저지의 한식당 팰리세이디엄 대원에서는 이홍구 주미대사와 대사관 관계자 및 국내 지상사 대표 등 한국사람들끼리 열린 "무역-투자 간담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되풀이됐다.

오전 11시부터 한시간 예정으로 열린 간담회는 이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측 참석자들의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로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다.

최근 철강 반도체 농산물 생활용품 등의 대미 수출 현장에서 겪고 있는 고초를 전하고 정부차원의 대책을 호소하기 위해 건의사항을 준비했던 업계 참석자들에겐 입을 뻥끗할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간담회를 주최한 주미 한국상공회의소(KOCHAM)측에서 부랴부랴 오찬 시간을 30분간 늦추고서야 기업들이 몇가지 건의사항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 대사는 지상사 대표들의 무역동향 브리핑을 겸한 건의가 다 끝나기도 전에 "워싱턴행 열차시간에 맞춰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참석자들이 분통을 터뜨린 건 당연했다.

"바쁜 기업인들을 들러리삼아 행사 보고용으로 간담회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싶었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