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볼 것 없다"(감독 이명세)는 경찰영화다.

그러나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이뤄지지 않는다.

극중 살인용의자 장성민(안성기)은 지능적이고 말이 없는 반면 우 형사(박중훈)는 거칠고 입만 열면 욕투성이다.

게다가 두사람 모두 경우에 따라 순수했다 교활해지는 인간의 이중적 모습을 보여준다.

시나리오는 다소 빈약하지만 대신 연출과 촬영술에서 탁월하다.

눈싸움(러브스토리),구두에 떨어지는 땀방울(미션임파서블)등 외화장면을 차용한 흔적도 보이지만 어지러운 나이트클럽 내부와 살벌한 폭력신을 흑백실루엣으로 처리한 장면은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다.

고단한 삶속에서도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나 인정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삽입한것 또한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혼자 사는 오빠를 위해 장갑을 넣어주는 시집간 여동생,잠복근무의 고달픔을 호소하는 후배에게 "쓸데없는 일 반복하는 게 형사야"라고 달래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 영화가 프랑스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대상과 촬영상등 4개 부문을 석권하고 21만달러에 팔렸다 한다.

"쉬리"는 같은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출품돼 기립박수를 받고,전수일 감독의 "허공에 멈추는 새"는 스위스 프리부르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낭보도 날아들었다.

도빌영화제는 프랑스 북부해안의 휴양도시 도빌이 제2의 칸을 목표로 1977년 미국영화제를 시작한데 이어 지난해 창설한 유럽 유일의 아시아영화제다.

의사인 알랭 파텔이 회장을 맡고 있으며 예술성에 비중을 두는 여타 유럽영화제와 달리 대중성을 중시한다.

대상은 에르메스,남우주연상은 레미 마틴,여우주연상은 시슬리등 패션 술 화장품 회사가 후원자인 점도 흥미롭다.

국제영화제 출품은 우리영화의 해외소개 및 수출의 관건이 되는 만큼 잇따른 수상소식은 반갑고 즐겁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공세와 유럽의 진입장벽앞에 한국영화가 갈길은 멀기만 하다.

기획과 시나리오 부재를 해결해야 하는건 물론이요 작품에 관계없이 듣기 좋은 외국음악만 골라쓰는 바람에 영화의 분위기가 모두 비슷하다는 윤정희씨의 지적에도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