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UNEP) 세계보건기구(WHO) 식량농업기구(FAO) 등의 후원으로 "세계 물 포럼"이 열렸다.

이 행사에서 "21세기 세계 물 위원회"는 지금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위생급수를 받지 못할 정도로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하지만 사태가 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어 시급히 대응책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비극적 사태가 25년 내로 발생할 수 있다고 엄중 경고했다.

그런데 이같은 물부족 사태의 도래를 일찌감치 내다보고 20세기 "흑빛 황금" 석유에 비견될 21세기의 "무색 황금", 즉 물을 착실히 캐 온 회사가 있다.

스위스의 네슬레(Nestl SA)다.

한국의 경우 네슬레는 생수보다는 "네스퀵"이라는 명칭의 코코아 밀크 혼합 분말 음료와 "테이스터스 초이스" "네스카페" 등의 인스턴트 커피,"커피 메이트" "카네이션" 등의 커피크림, 그리고 "네슬레"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종합식품회사인 네슬레의 연간 매출액 62조원 가운데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생수다.

1992년 프랑스의 페리에(Perrier)사를 인수한 이래 지금까지 12개국 주요 생수회사를 인수해 세계 생수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네슬레는 1866년 스위스의 헨리 네슬레라는 약제사가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들을 위해 모유 대체 음료를 만든 데서부터 시작됐다.

나뭇가지 위의 한 새 둥지에서 두 마리의 새끼에게 음식을 먹이는 어미 새의 모습이 네슬레의 로고인 것도 이 때문이다.

8년 후 농축유제품 사업자 줄스 모네라에 인수된 후부터 네슬레는 잇따라 밀크초콜릿 제조업체와 초콜릿 메이커 등과 합병하며 부쩍부쩍 성장했고, 급기야 1905년에는 농축유제품 시장에서 최대 경쟁자였던 "앵글로 스위스 밀크"사와 합치며 완벽한 다국적 기업의 면모를 갖추었다.

합병에 합병을 거듭하다보니 일찍부터 전문경영 관행이 정착됐고 주식분산도가 높아 최대주주의 지분이 3%가 채 되질 않는다.

또 유럽회사답게 미국 식품회사들과 달리 표준화된 제품의 세계화 전략보다는 현지인 입맛에 맞는 제품을 현지에서 만들어 파는 현지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로써 세계 80개국에 23만여명 근로자와 5백여개 공장을 거느리고 무려 8천5백여종에 이르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본국 스위스에서의 매출액은 전체의 2%에 불과하지만 네슬레의 연간 전세계 매출액은 우리 나라 4천6백만 국민이 연간 1백여 가지 주요 가공식품에 쓰는 총액수의 3.6배가 넘으며 미국 1,2위 식품회사인 크래프트와 콘아그라를 합친 규모와 같다.

특히 네슬레의 매출의 28%를 차지하는 생수 및 음료부문은 세계 청량음료계의 제왕 코카콜라 매출의 80%에 육박한다.

네슬레는 영아 사망률을 낮추려는 한 약사의 충정에서 시작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기회로 오늘의 영광스런 자리에 오르게 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집에서 태평하게 요리를 해 먹을 수 없는 위급 시기일수록 네슬레에는 이득이었다.

1970년대 후반 네슬레가 프랑스의 "로레알" 화장품 회사와 "알콘" 콘택트렌즈 회사 등으로 다각화를 추구했던 것도 전후 태평성대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이나 화장품 등보다 네슬레의 미래는 세계 물 부족 위기에 더 달려 있지 않나 싶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인한 공산권 국가들의 시장편입이 1990년대 10년간의 성장을 보장했다면 아시아 지역의 물부족과 급속한 수질악화는 21세기 1백년간의 성장을 네슬레에 기약하고 있는지 모른다.

전문위원 shindw@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