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금 외환딜링룸의 조태영(42) 부장은 국내 외환 딜러들의 "맏형"이다.

각국 통화를 사고 파는 "외환딜링"이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했던 지난 80년대초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1초에 승부한다"의 저자로 유명한 김상경씨나 영국계인 스탠더드차터드은행 서울지점 출신의 장영은씨가 그보다 약간 앞선 환딜러 "1기" 멤버라면 조 부장이 바로 그 이후 기수다.

특히 그는 환딜링 업무를 정통으로 배운 첫 케이스로 주목받는다.

그만큼 기본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외환위기때 종금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때도 그가 있던 한국종금은 꿋꿋이 견딜 수 있었다.

유동성위기로 종금업계 전체가 흔들리던 98년엔 환딜링으로 2백억원의 이익을 회사에 안겨줬다.

그 혼자서도 연 30억-50억원의 수입이 가능하다.

조 부장은 "대단한 것이라고는 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그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기본기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비결을 귀띔한다.

지난 82년 서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조 부장은 LG상사 외환과에서 국내기업들의 수출신용장(L/C)을 처리해 주는 네고(외환매입)업무로 외환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여기서 국제금융시장이라는 "큰 물"을 알게 된다.

그는 이듬해 미국계 은행인 체이스맨해튼 서울지점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외환업무를 배우기 시작한다.

83년부터 94년까지 11년동안 환딜링과 채권중개, 파생금융상품, MMF(머니마켓펀드) 등 취급해 보지 않은 금융상품이 없다.

실력을 인정받아 94년부터는 일본 지점에서 외환거래와 파생금융상품거래, 채권거래 등 3개분야 데스크도 맡아 현지인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때 국내 금융업계에 처음으로 옵션거래를 소개했다.

옵션거래는 보험성격이 강하면서도 다양한 투자기법을 적용할 수 있어 이후 국내금융업계에서 주요 투자대상이 됐다.

96년 그는 귀국과 동시에 한국종금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국내 최초로 "딜링룸"을 만들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실력과 규모면에서 국내 최강이다.

외환위기때 해외 은행들이 국내 금융기관들과 줄줄이 거래를 끊을때도 한국종금이 7-8개의 거래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 부장은 "국내 금융기관들은 덩치만 컸지 아직 국제금융분야에서는 초보단계"라며 "제2의 외환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국제 금융전문가들을 육성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