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밤 AFP통신은 긴급뉴스 하나를 세계 전역에 타전했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가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총리직을 사퇴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날 오부치 총리는 수백명의 여야 의원들 앞에서 "이달말로 끝나는 99회계연도의 성장률이 목표치인 0.6%에 미달하면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 순간 그의 표정과 어조는 비장했다고 AFP는 전했다.

이 선언대로라면 오부치 총리의 조기사임은 거의 불가피하다.

지금의 일본경제 상태로 볼 때 0.6% 성장률 달성은 불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일본경제는 작년 3.4분기와 4.4분기에 2분기 내리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99회계연도(99년4월~2000년3월)의 마지막 분기인 올 1.4분기가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1.4분기 성장률이 크게 높아지지 않는 한,지난 1년간 성장률이 목표치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성장률을 집계해 발표하는 경제기획청의 사카이야 다이이치 장관도 일본경제가 성장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최근 말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오부치 총리가 사퇴발언을 한 것은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의 표현은 아닌듯 하다.

경기부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각오와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우리 정치인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용어지만 실천은 하지 않는 "책임정치 구현"을 이웃 일본에서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일본성장률은 오는 5월 공식 발표된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오부치 총리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최고 지도자가 겨우 경제성장률이 목표치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사임하겠다고 온 천하에 공표하다니.

국가경제를 망친 것도 아니고,단지 경제를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총리직을 버리겠다는 오부치의 발언은 마음이 소심한 "소인"의 행동일지 모른다.

정치 일선에 다시 나서고 있는 국내 환란 책임자들의 "대범함"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가 경제성장률의 목표치 미달을 책임지고 총리직을 진정 물러난다면 국내 정치인들은 이런 모습을 본받아야 할 듯하다.

국민들은 이런 "소심한" 정치인의 아름다운 퇴진을 보고 싶어 한다.

이정훈 국제부 기자 leehoon@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