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세돌을 맞는 막내는 요즘 가위로 종이 오리기(사실은 찢기)에 한창 재미를 들였다.

아이의 첫번째 공격대상은 신문 사이에 끼어 들어오는 광고지다.

내가 신문을 보는 동안 아이는 알락달락한 광고지들을 접다가 찢다가 꽁꽁 뭉쳐 공을 만들어 던지기도 한다.

그쯤 되다 보니 제 언니나 오빠에게 하루도 지청구를 듣지 않는 날이 없다.

어느 결에 언니 오빠의 책상 위를 섭렵해서 공책이랑 애써 마련한 과제물들을 제 방식으로 해체하는 것이다.

어제 밤,아이를 재우고 여느 때처럼 거실 가득 널린 종이조각들을 치우던 나는 깜짝 놀랐다.

무심결에 들여다 본 조각 하나에 이곳 인도네시아는,어쩌고 하는 글귀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다른 조각들을 그러모았다.

두어해전 인도네시아로 간 선배의, 연말에 보낸 편지의 답이 없어 은근히 기다리던 편지였다.

이 방 저 방을 샅샅이 훑은 끝에 나는 간신히 구겨지고 오려지고 찢긴 십수조각의 종이를 수거했다.

손바닥으로 펴고 투명 테이프로 복원한 편지는 모두 석 장이었다.

그런 대로 네모꼴이 된 편지를 읽는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꼬깃꼬깃 접힌 탓에 뭉개진 글자,군데군데 아예 떨어져 나간 글자들을 되짚어 읽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 읽고 나서 석장의 누더기 같은 편지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편지는 여느 편지와는 정말 달라 보였다.

하나 하나 정성껏 붙여 모은 그것은 몹시 소중한,영원히 간직해야 할 문서처럼 보였으며 문장 하나 하나를 되짚으며 읽은 탓에 그 안의 내용도 한층 더 정답고 의미 깊게 다가오기도 했던 것이다.

깔끔한 봉투를 열고 빳빳한 편지지인 채로 읽었더라면 응,잘 있구나,곧 돌아오겠구나 하고 그저 심상하게 지나치고 말았으리라.

나는 구겨진 덕분에 두툼해진 편지를 손에 들고 선배를,그의 이야기들을 오래 오래 생각했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잠든 아이의 볼을 꼬집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제 무심한 가위질이 내게 어떤 특별한 경험을 갖게 했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가 끄응,귀여운 소리를 내며 돌아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