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시민의 총평 ]

우선 인권과 정치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자리바꾸기" 현상이다.

오랫동안 정통민주세력이자 개혁정당임을 자임했던 민주당은 인권과 정치분야에서는 그러한 자의식과 정체성을 거의 잃어버린 모습이다.

특검제와 인사청문회 공약을 스스로 뒤집은 가운데 인권공약은 1997년 대선당시 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수준으로 "퇴화"했고 정치분야에서 공약다운 공약은 김대통령이 애착을 가졌던 1인2표식 정당명부제 도입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만 바라보는 집권당의 전통적인 행동양식이 어김없이 재현된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불법도.감청과 금융계좌 추적의 남용방지를 이슈화하고 인사청문회 확대와 특검제 도입 등 민주당의 야당시절 공약을 무기로 역공을 취하는 양상이다.

어제의 공동여당인 자민련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절충하면서 내각제 등 권력구조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공약자체만 놓고 현실적합성과 구체성에서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능가한 것은 주로 민주당의 소극적 태도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행정분야에서는 집권당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민주당이 전자정부적 관점에서 행정분야의 개혁을 약속함으로써 비교우위를 보인다.

야당은 이것을 "아부식 공약"과 지방정부의 권한강화 등 공세적 제도개혁 공약으로 만회하려 한다.

공무원 보수를 민간중견기업 수준으로 올리고 공무원 직장협의회를 의무화하겠다는 자민련의 공약과 한나라당의 지방경찰제 공약이 대표적인 예다.

한때 지방자치제 실시에 당운을 걸었던 민주당이 이 제도의 발전을 도모할 공약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중앙권력을 잡고 있는 때문일 것이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을 뒷받침하는 민주당의 공약이 모든 면에서 야당을 능가한 것으로 보인다.

상호주의와 안보태세를 강조하면서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하는 야당의 입장은 나름의 일관된 비전과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뚜렷한 정책공약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특히 모든 종류의 남북교류를 국회의 통제하래 두려는 한나라당의 공약은 남북관계의 일상적 정치쟁점화를 부추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시민 성공회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