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신탁을 받은 부동산을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실제 주인이 자기 땅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송진훈 대법관)는 29일 명의신탁 부동산을 신탁자 몰래 은행에 담보로 잡힌 혐의로 기소된 박모(46.회사원)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하고 횡령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95년 7월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지된 명의신탁 약정이 무효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실소유자를 알 수 없도록 매매한 명의신탁 부동산에 대해 수탁자의 소유권을 인정해 준 것이어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의신탁 약정이 있었더라도 이 사실을 모르는 부동산 매도인과 수탁자 사이에 매매계약이 체결돼 수탁자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가 이뤄졌다면 이는 수탁자가 유효하게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명의신탁 약정은 무효이므로 수탁자가 이 부동산에 대해 근저당권을 설정했더라도 횡령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러나 원래 자기 명의로 등기돼 있던 땅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명의신탁하거나 매매할 때 부동산 매도인이 명의신탁 약정이 돼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경우에는 이같은 판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96년 9월 김모씨 등 9명과 공동으로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임야 7천2백여제곱m를 정모씨로부터 매수하면서 편의상 단독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자기 앞으로소유권 등기를 해놓은 뒤 다음해 7월 이 땅에 대해 4억6천여만원 규모의 근저당권을 설정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문권 기자 mkkim@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