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진통 끝에 29일 증산에 합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석유 수입국들의 희망엔 못미쳤지만 하루 1백45만배럴(6.3%)의 증산은 세계 석유수급의 극심한 불균형을 어느정도까지는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증산발표 직후 WTI(서부텍사스 중질유)가격이 70센트 떨어진 배럴당 27달러를 기록한 것은 석유시장이 이번 합의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또 비OPEC국인 러시아 멕시코 오만 노르웨이 등이 이번 합의와 동일한 비율로 증산할 것이 확실하다면 오는 4월부터 적용될 석유증산량은 미국의 발표대로 하루 2백80만배럴에 달해 유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실효성있게 지켜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적지않고 세계 석유재고량이 이미 바닥선에 와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증산합의가 매우 단기적인 효과를 거두는데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없지 않다.

OPEC이 하루 1백45만배럴을 증산키로 했다고는 하지만 각국이 은밀히 증산해왔던 소위 치팅 (cheating) 물량만도 1백만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실질적인 증산량은 45만배럴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또 증산합의 유효기간이 오는6월까지 3개월에 불과해 그 이후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도 지금으로선 단정하기 힘들다.

OPEC이 지난해 3월 극적인 감산에 합의함으로써 막을 올린 고유가 시대가 이번 합의로써 막을 내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을 뿐더러 유가가 지난해 수준을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일부의 분석도 눈여겨볼 일이다.

OPEC이 당초 예상을 깨고 지금까지 감산합의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산유국들의 재정적자 등이 매우 심각해 이를 타개하는데 극적인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등 산유국 경제가 최근들어 상당한 회복세를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저유가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미국의 빌 리처드슨 에너지장관이 OPEC 총회를 앞두고 중동지역을 두차례나 방문했고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들을 잇달아 방문해 겨우 이루어낸 것이 이나마의 증산물량이고 보면 국제유가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30달러선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우리 정부로서는 석유관련 세율을 조정하는 등 단기적 가격안정 만을 추구하던 지금까지의 정책기조를 과감히 전환해,국내 유가를 현실화하고 에너지 다소비형의 경제구조를 개혁하는등 중장기 대책을 서둘러 추진해가야 할 것이다.